김현우 작가의 『타인을 듣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감정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돌아보게 만드는 에세이다. 이 책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닌, 타인의 감정을 '듣는' 법에 대해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나는 이렇게 내가 가지지 못하는 시선과 생각을 가진 작가의 글을 참 좋아하는데, 그런 면에서 김현우의 글과 생각은 내게 많은 질문과 생각을 던진다.
공감을 다시 배운다는 것
『타인을 듣는 시간』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공감'에 대한 작가의 태도였다. 흔히 우리는 공감을 단순히 '이해한다', '그럴 수 있겠다'는 말로 정의하지만, 김현우 작가는 그것을 훨씬 더 섬세한 감정의 교류로 본다. 그는 타인의 말을 '진심으로 듣는 것'이야말로 공감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독자에게 말하는 듯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누군가의 속마음을 듣는 경험처럼 읽힌다. 작가는 자신이 겪은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예컨대 친구와의 대화에서 느낀 거리감,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의 어색함 같은 순간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되며, 그것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자주 상대의 말이 아닌 자신의 말에만 집중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런 일상적이면서도 누구나 겪을 법한 상황 속에서 작가는 공감이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그저 머물러주는 일'임을 조용히 알려준다. 독자는 책을 통해 스스로의 태도를 반추하며, 관계 속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감정을 언어로 옮긴다는 일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김현우 작가는 감정을 말로 옮길 때 발생하는 어긋남과 왜곡,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오해들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그가 묘사하는 감정은 단순한 기쁨이나 슬픔 같은 명확한 감정보다, 설명하기 애매하고 정체가 불분명한 감정들이다. 예컨대 "괜찮다"라는 말이 진짜 괜찮음을 의미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 말 이면에 있는 감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작가는 바로 그 부분에서 '듣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말 그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까지 들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감정은 대부분 무언의 상태로 존재하며, 언어는 그저 그것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그의 인식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책은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데 있어 우리가 얼마나 서툰 존재인지, 그리고 그 서투름 속에서도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지를 잔잔한 문체로 풀어간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전달하고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되며, 누군가의 말 뒤에 숨어 있는 감정을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눈을 갖게 된다.
소통, 그 단순하지만 어려운 일
소통이라는 단어는 익숙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타인을 듣는 시간』에서는 진정한 소통이란 ‘서로의 감정에 공간을 내어주는 일’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작가는 우리가 흔히 범하는 실수들—상대의 말을 끊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거나,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대화를 이어가는 방식—에 대해 조용히 지적한다. 책을 읽다 보면 소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배려와 인내를 필요로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특히 작가는 "듣는다는 것은 침묵을 견디는 일"이라고 말하며, 우리가 너무 쉽게 반응하고 너무 빨리 판단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타인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것, 그것이야말로 소통의 가장 기본이자 가장 어려운 기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은 단지 인간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업무상 커뮤니케이션, 친구와의 대화, 심지어는 자기 자신과의 내적 대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책을 덮고 나면, 소통이라는 주제에 대해 조금은 더 깊이 고민하게 되고, 다음 대화에서는 조금 더 신중해지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김현우 작가의 글은 그렇게 우리 내면에 조용한 울림을 전한다.
『타인을 듣는 시간』은 단순히 감정을 다룬 에세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태도, 타인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선물하는 책이다. 책장을 덮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조금은 더 조용히, 그러나 진심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새겨진 문장
_p. 22
나의 세계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 세계에서는 같은 언어도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런 까닭에 타인과 나를 묶어서 함부로 '우리'라고 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 이런 깨달음이 오웰을 전사로 만들었다. 피압제자 편에서 압제자에 맞서 싸우는 길을 택한 것이다.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해도 그 후의 행동은 각자의 기질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느 그런 깨달음이 곧장 선명한 정치투쟁으로 이어지는 것에 회의적이다. 다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말해 보자면,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타인의 언어를 익힘으로써 나의 언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알아 가는 그 과정이 성장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P. 38
'연대'는 타인을 이해한 후에야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상관없이 그들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_p. 210
나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고 나면 조금 더 타인의 기준, 혹은 그의 입장에 맞게 나를 조정하는 과정이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