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제법 다양한 고전들을 접해왔다. 그러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나서의 감정은 조금 달랐다. 무언가를 ‘읽었다’기보다는, 정말 어떤 사람을 ‘만났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 사람의 말투와 몸짓, 세계를 대하는 태도, 사랑하고 분노하는 방식이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다. 조르바. 처음엔 그저 괴짜처럼 보였다.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그의 모습은, 조금은 불편하고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말 한마디, 삶을 향한 태도를 하나씩 들여다볼수록 이상하리만치 끌리게 되었다. 나와 너무도 다른 사람이기에, 오히려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더 선명하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르바,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 남자
조르바는 단순히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살아 있다는 것 자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눈앞에 닥친 현실에 불평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열정과 호기심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간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춤추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때로는 어리석게 굴기도 한다. 이처럼 조르바는 모든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투명하게 표현한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래된 감정의 창고에 먼지를 쌓아둔 채 살아온 나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너는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만 살고 있느냐고. 왜 매 순간을 그렇게 계산하며 살아가느냐고. 그의 말 중 “행복이란 무엇이냐? 순간을 사랑하는 일이다”라는 구절이 유독 깊이 남았다. 이 얼마나 간단하면서도 강렬한 삶의 철학인가. 조르바는 철학자가 아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철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머리로만 사는 현대인들에게, 조르바의 존재는 일종의 강렬한 충격이자 해방처럼 느껴진다.
침묵하는 ‘나’와 말하는 조르바
작품 속 화자는 조르바의 친구이자 이야기를 풀어가는 인물이다. 그는 배운 것이 많고, 사색하며 책을 읽는 사람이다. 조르바와는 정반대의 인간형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으로 갈수록, 그는 점점 말이 줄고, 조르바의 삶을 ‘듣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이 가진 진짜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독서가로서 나는 늘 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고 했고, 감정을 문장으로 정리하려는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조르바를 만나고 나서 그런 나의 태도가 꽤 많은 부분에서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음을 느꼈다. 삶은 결국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고, 겪고, 몸으로 부딪히는 과정 속에서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이 소설이 알려주었다. 조르바는 그런 삶의 진심 그 자체다. 그는 나보다 똑똑하지 않지만, 삶을 더 깊이 알고 있다. 지식이 아닌 경험, 논리가 아닌 감각, 조심스러움이 아닌 직진. 어쩌면 이 소설의 화자처럼 나도 조르바를 통해 조금씩 말수가 줄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신 조용히 마음속에서 그를 곱씹고, 그의 말 한마디가 내 일상 속 선택의 기준이 되고 있다.
조르바, 나의 영혼을 흔든 인물
『그리스인 조르바』는 단지 한 남자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아주 오래된 질문에 하나의 강렬한 대답을 던지는 작품이다. 조르바는 나에게 삶을 정리하려 들지 말고, 그저 살아보라고 말한다. 무언가를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하고, 실수하고, 상처받아도 괜찮다고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더 이상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조심스러운 연습은 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조르바처럼 정직하게 감정을 느끼고, 순간을 즐기고, 하루를 통째로 살아내는 사람. 비록 그런 삶을 완전히 살아낼 용기는 아직 없지만, 최소한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내 안에서 조금씩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