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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 자조와 자기부정의 언어

by vaminglibrary 2025.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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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 열린책들

 

작가 소개 - 그림자 속을 걷던 천재

다자이 오사무(본명 쓰시마 슈지, 1909~1948)는 일본 쇼와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그의 작품은 한결같이 자기 파괴적인 인간 내면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태도로 채워져 있다. 비행과 방탕, 자살 시도, 알코올 중독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며, 그의 문학은 그 삶 자체와 거의 동의어였다. [사양], [인간 실격]과 같은 작품을 통해 전후 일본 젊은 세대의 정신적 상실감을 대변하는 지금까지도 깊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인간 실격]은 그의 마지막 유작으로, 작가 자신의 고백록이라 불릴 정도로 자전적 색채가 짙다.

여기서는 [사양]과 같이 묶인 열린 출판의 책이지만 [인간 실격]만 서평 한다.

 

가면을 쓴 광대, 요조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표면적으로는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인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웃음은 타인과 자신 사이의 거리, 공포, 불신을 감추기 위한 가면에 불과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진심이라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사회의 규범 속에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점점 자아를 상실해 간다. 이 소설은 요조의 일기를 편집한 '서술자'의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 편의 기록과 짧은 후기라는 구조를 갖는다. 처음에는 유머와 괴상한 행동으로 타인의 시선을 피해 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요조는 자신의 외로움, 불안, 인간에 대한 공포를 감당하지 못하고 붕괴해 간다. 그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이해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이때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 일종의 불안한 공명이다. 요조는 낯설지만 낯설지 않다. 누구나 한 번쯤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나'를 마주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한 경험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기록이다.

 

자조와 자기부정의 언어 - '인간 실격'이라는 문장의 무게

작품 제목이자 주제이기도 한 '인간 실격'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인간 자격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히 사회적 실패나 도덕적 타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세계에 '사람으로서 존재할 자격이 없다는 자각'을 담고 있다. 요조는 인간관계, 사랑, 일, 사회 그 무엇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점점 파괴되어 간다. 그러나 그 파괴의 방식은 격렬하지 않고, 느리며, 조용하다. 마치 누군가가 오래된 목재에 균열을 내듯, 천천히 무너져 내린다. 그의 언어는 담담하지만 고통스럽다. "나는 사람을 무서워하였다."라는 문장은 어찌 보면 유치할 정도로 단순하지만, 읽는 이의 가슴을 찌른다. 그것은 진심이기 때문이다. 그는 '나약하다'는 말을 피하지 않고, '비겁하다'는 고백조차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솔직함이 이 작품의 핵심인 것이다.

 

허무와 희망 사이에서 - 다자이의 유산

[인간 실격]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 인물의 비극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독자가 자신의 내면에 들어, 숨겨진 공허를 마주하는 체험이다. 요조는 끊임없이 타자에게 이해받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그 이해를 견디지 못한다. 그는 인정받고 싶어 하면서도, 사회의 어떤 인정도 스스로 거부한다. 그 모순된 감정 속에서, 결국 그는 자기 자신에게조차 등을 돌리고 만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절망만을 남기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요조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체념일 수도, 구원이 될 수도 있다. 다자이 오사무는 요조를 통해 인간이 끝까지 버려진 존재처럼 보일지라도, 그 고백 자체가 인간적이며, 고통 속에서도 말할 수 있는 자만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전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이유는, 그 속에 '우리 모두의 그림자'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완전한 인간이 아니며, 누구도 철저히 인간답게 살 수 없다는 다자이의 통찰은,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가장 슬프고도 진실된 위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실패한 인간, 실패하지 않은 문학

[인간 실격]은 실패한 인간 요조의 고백이자, 실패 속에서도 끝끝내 무언가를 붙들려했던 다자이 자신의 유서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우울하고 기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단순히 우울하거나 비관적인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현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잔혹하지만 치열한 사유의 결과이다. "자, 당신은 인간인가?"라는 질문이 끝없이 반복되는 시대에 이 책은 하나의 거울이 되어준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조금은 불안하고, 조금은 망가졌으며, 그래도 여전히 계속해서 살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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