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여, 내가 그대에게 진흙으로 빚어달라 청했습니까?
나를 어둠에서 끌어내달라 애원했습니까?" - 실낙원
괴물보다 더 괴물 같았던 인간 이야기
김겨울 작가의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를 읽으며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 바로 이 작품이다. [실낙원]의 한 구절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내게 진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제목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자동으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목에 나사못이 박힌 초록색 피부의 거대한 괴물 말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런 이미지에 익숙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작품을 읽고 나서 가장 놀란 점은, 이 이야기가 단순한 괴물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인간, 그리고 책임지지 못한 선택이 불러온 고통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책은 과학이 발전하던 시기, 인간이 어디까지 신의 영역을 넘보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고전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관계, 외로움, 이해받고 싶은 마음, 책임이라는 너무도 ‘지금’ 같은 감정들이 녹아 있는 작품이었다
꿈으로 시작된 악몽
주인공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을 사랑하는 젊은 청년이다. 그는 생명의 비밀을 알고 싶어 했고, 마침내 스스로 인간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만든 존재가 살아 움직이자마자, 그는 공포에 휩싸여 도망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그의 피조물은 처음엔 나쁜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했고, 따뜻한 가족을 바라보며 부러움과 외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외모를 보고 무조건 두려워했고, 공격했다. 결국 그는 스스로를 괴물이라 느끼게 되었고, 세상에 복수하려 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참 마음이 아팠다. 겉모습만으로 거부당하고, 아무리 착한 마음을 품고 있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 그가 악해졌다는 이유를 단지 그 자신의 본성으로만 볼 수 있을까? 오히려 그런 환경과 외면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책임한 창조, 무책임한 인간
읽다 보면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진짜 '괴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생명을 만들었지만, 그 생명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창조의 순간까지만 관심 있었고, 이후의 삶, 감정, 고통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한 태도는 결국 자신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큰 고통으로 돌아온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피조물 역시 인간이었기에 감정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었다. 외로움을 느꼈고, 사랑받고 싶어 했고, 자신을 알아봐 주는 누군가가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가 원한 건 단순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눈, 자신을 받아들여 주는 존재. 하지만 그는 끝내 그런 존재를 만나지 못한다.
새로운 시선
『프랑켄슈타인』은 분명 오래된 고전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고전이 왜 고전인지를 다시금 느꼈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 예를 들어, ‘우리는 겉모습만 보고 누군가를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 ‘무언가를 만들어 낸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외로움이 사람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 같은 질문들이다.
이 책은 과학 소설처럼 시작하지만, 결국 인간의 감정과 윤리에 대한 이야기로 깊어져 간다. 그러다 보니 읽는 동안 계속해서 내가 이 인물이라면 어땠을까,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이 무섭기보다는, 그가 느꼈을 외로움과 분노가 무거운 여운으로 남았다.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읽을수록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다. 꼭 문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인생이나 사람 사이의 관계, 책임이라는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깊은 울림을 받을 수 있다. 무섭다기보다는 슬프고, 공포스럽다기보다는 철학적인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 낸 결과물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새기게 되었다. 어쩌면 『프랑켄슈타인』은, 괴물 이야기 속에 숨겨진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새겨진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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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추천글
메리 셸리. 바로 그녀가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그러나 사랑받고 싶은 마음. 거절당하면서도 끝까지 ㅗ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 비록 그 결말이 비극일지라도 계속 걸어가는 인간의 마음. 그게 삶이라는 것을 알았던 여성.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계속 기억할 것이고, 그 모든 눈빛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부디,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존재에게 평아니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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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모두들 끔찍한 흉물을 싫어하지. 그러니 살아 있는 것중에 가장 흉측한 나를 얼마나 혐오하겠는가! 그러나 그대, 창조자인 그대가 나를 혐오하고 피한다니, 나를 창조한 그대와 피조물인 나는 서로 죽음 말고는 끊을 수 없는 사이로 엮여 있다. 그런 당신이 나를 죽이려 하다니. 어찌 감히 생명을 가지고 이런 장난을 칠 수 있지? 나를 만든 그대여, 응당 그대가 해야 할 의무를 다하라. 그럼 나도 그대와 나머지 인간에 대한 의무를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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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굳이 더하려 하지 않아도 나 역시 이만하면 충문히 고통을 받았다. 삶이란 고뇌의 연속에 불과하다지만 내게는 그래도 송중한 것이다. 그리하여 내 삶을 지킬 것이다. 기억하라, 그대가 나를 그대보다 훨씬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말이다. (중략) 나야말로 그대의 정의와 사랑, 관용을 모두 받아 마땅한 존재이다. 기억하라. 내가 그대의 피조물이다. 나는 그대의 아담인데 어찌 타락한 천사가 되어 잘못한 것도 없이 기쁨을 빼앗기고 그대에게서 쫓겨나야 한단 말이냐.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 것이 축복받은 것들뿐인데 어째서 나만 이렇게 홀로 배척을 당한단 말이냐. (중략) 나를 다시 행복하게 만들거라. 그럼 다시 미덕을 갖춘 존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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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죽였으니 나의 범죄는 절정에 달한 것이다. 내 불행한 존재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단 말이다. 아, 프랑켄슈타인! 관대하고 이타적인 인간아! 이제 와서 그대에게 용서를 구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그대가 사랑하는 모든 걸 파멸시키며 그대를 돌이킬 수 없이 비참하게 무너뜨렸다. 아! 그는 이미 차갑게 식었구나. 그는 더 이상 내게 답을 줄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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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제아무리 비참하게 무너졌어도, 나의 괴로움은 언제나 그대보다 크니까. 후회로 남은 자책은 죽음이 영원히 상처를 덮지 않는 한, 상처로 영원히 곪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