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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올랜도] : '삶'이 아닌 '시간'을 사는 존재

by vaminglibrary 2025.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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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올랜도
버지니아 울프 [올랜도] / 열린책들

 

작가 소개 - 의식의 흐름으로 문학을  다시 쓰다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는 20세기 영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모더니즘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녀는 전통적 소설 구조에서 벗어나, 인간의 의식 흐름과 내면의 다층적 감각을 서술하는데 집중하였다. [등대로], [댈러웨이 부인]과 같은 작품은 '내면적 사실성'을 문학적으로 구현한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울프는 문학뿐 아니라 여성주의 사상에서도 깊은 족적을 남겼으며, [자기만의 방]은 지금도 페미니즘 고전으로 회자된다. [올랜도]는 그녀의 실험성과 위트를 집약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그녀의 연인이었던 비타 색빌웨스트에게 헌정되었다.

 

첫 번째 풍경 - '삶'이 아닌 '시간'을 사는 존재

[오랜도]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시간을 따라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올랜도는 16세기의 귀족 청년으로 시작하여, 수백 년을 살아내며 어느 순간 여성으로 변한다. 그는(또는 그녀는) 나이를 먹지 않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고정된 개체가 아닌, 유동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울프는 이 소설에서 시간과 정체성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올랜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역할과 인식을 경험한다. 그것은 육체의 변화라기보다 존재의 다면성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다. 소설의 시간은 연대기가 아닌, 감각과 사유의 단층으로 겹겹이 쌓이며, 우리는 올랜도의 삶을 따라가는 동시에, 우리의 삶 속에서 동일한 유동성을 느끼게 된다. 이 작품에서 시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과 함께 호흡하는 하나의 등장인물이다. 울프는 시간을 늘리거나 줄이며, 때로는 멈추게도 하며, 독자에게 질문을 한다. "삶이란 과연 선형적으로 흘러가는 것인가?"

 

성(性)의 해체 - 남성과 여성의 경계에서

[올랜도]의 가장 혁명적인 지점은, 성의 이분법을 완전히 해체하는 서사 구조에 있다. 올랜도는 소설의 중간 지점에서 갑작스럽게 여성이 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아무런 비극이나 충격 없이, 마치 새로운 옷을 갈아입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는 남성으로서 전장을 누비고 대사관에서 일했으며, 여성으로서 살롱을 거닐고 문학을 사랑한다. 하지만 울프는 이 전환을 성별에 대한 단순한 도전이나, 남성과 여성 중 하나를 택하는 행위로 보지 않는다. 그녀는 말한다. "올랜도는 여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내면엔 남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기술은 울프가 성별을 '사회적 구성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녀는 성을 생물학적 이분법이 아닌, 유동적 정체성의 일부로 다룬다. 그리하여 독자는 울프가 성 역할에 대해 지닌 비판적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올랜도]는 성 정체성을 정해진 틀로 보지 않고, 개인적 경험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확장되는 개념으로 그린다.

 

문학과 존재 - 메타픽션의 거울 속에서

울프는 [올랜도]를 단지 이야기의 틀로만 구성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문학이란 무엇이며, 작가란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녹여낸다. 전체 서사에는 명확한 '전기작가'가 등장하여 올랜도의 삶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하지만 이 '전기'는 언제나 사실과 허구 사이를 넘나들며, 객관성을 주장하면서도 끊임없이 흔들린다. 이러한 구조는 메타픽션적 요소로 작용한다. 독자는 작품의 내용만이 아니라, 그 내용이 쓰이는 방식과 서술자의 불안정성까지 자각하게 된다. 이는 곧 문학이 진실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진실을 구성하는 도 하나의 '사유 체계'임을 암시한다. 울프는 소설을 쓰며 동시에 그 쓰기를 의심하고, 질문하고, 해체한다. 그래서 [올랜도]는 하나의 소설이자,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를 대상으로 한 비평이기도 하다. 이 이중적 구조는 독자에게 지속적인 의식의 전환을 요구하며, 단순한 줄거리 너머의 사유로 이끈다.

 

올랜도의 귀환

소설의 마지막에서 올랜도는 20세기 런던에 도착한다. 그는 이제 여성이며, 과거의 시간을 모두 기억하면서도 새로운 시간을 살고 있다. 그녀는 사랑하고, 글을 쓰고, 여전히 변화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그녀는 머리 위로 날아가는 거대한 새들 바라본다. 그 새는 무엇일까. 시간일까, 정체성일까, 혹은 문학 그 자체일까. 울프는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올랜도의 눈빛과 함께 우리를 그 세계에 남겨두며 말을 아낀다. [올랜도]는 단순한 이야기로 이해될 수 없다. 그것은 여성과 남성, 과거와 현재, 사실과 허구, 문학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이자 기나긴 여정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 작품을 통해 단지 올랜도의 삶을 그린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기록하고 동시에 질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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