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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서평 : 부조리 속의 존재를 응시

by vaminglibrary 2025.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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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는 오지 않는다" - 부조리의 무대 위에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연극사에서 가장 상징적이며, 동시에 가장 난해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작품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다. 두 남자가 나무 한 그루가 있는 황량한 장소에서 '고도(Godot)'라는 인물을 기다린다. 하지만 고도는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이처럼 단출한 줄거리 속에서 베케트는 인간 존재의 실존적 고뇌, 의미 없는 반복, 그리고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이 연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허무주의와 실존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 유럽의 문화적 공허 속에서 탄생하였다. 작품 속 플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향하지 않고 그저 '기다릴 뿐'이다. 이 기다림은 목적도, 끝도 없으며, 점점 더 반복 속에 빠져든다. 이 점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는 알베르 카뮈가 [시지프 신화]에서 말한 부조리의 체험을 연극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말의 한계, 침묵의 언어

[고도를 기다리며]는 언어의 역할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대화를 나누지만, 이 대화는 대부분 의미가 없거나, 반복되고, 때로는 서로 엇갈리기까지 한다. 베케트는 의도적으로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말이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의미를 회피하거나 왜곡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것이다. 이는 언어의 무기력함, 즉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거나 타인과 진정한 소통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언어의 한계를 고발하는 장치다. 이러한 방식은 사르트르나 메를로퐁티 같은 실존철학자들의 이론과도 맥을 같이한다. 인간은 존재하지만, 그 존재의 본질은 부재한다. 언어는 존재를 정의하지 못하고, 오히려 존재의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결국 베케트는 침묵 속에 진실이 숨어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무대 위의 정적, 허공을 바라보는 인물들의 시선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암시한다.

 

기다림이란 무엇인가 - 고도를 기다리는 우리 모두

고도는 누구인가? 신일 수도 있고, 구원일 수도 있으며, 혹은 그저 삶의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기다림의 부재는 관객에게 강한 허탈감과 동시에 묘한 위안을 안겨준다. 누구나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어떤 이는 성공을, 어떤 이는 사랑을 혹은 죽음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 기다림은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고, 기다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리면서도 그 이유를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그들의 대화는 이 사실을 더 명확하게 드러낸다. 고도는 오지 않지만, 그들은 떠나지 않는다. 이 역설적인 상황은 현대인의 실존 조건과도 유사하다. 우리는 분명 목표와 의미를 향해 나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며 그 의미를 애써 만들어내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고도를 기다리는 행위는 결국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사명과도 같다. 의미 없는 세계 속에서 의미를 찾기 위한, 혹은 그 허무를 견디기 이한 인간의 본능적 행동이다. 그렇기에 [고도를 기다리며]는 단순한 연극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잘 보여주는 철학적 거울이라 할 수 있다.

 

부조리 속의 존재를 응시하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단순한 줄거리와 반복적인 대사 속에 여러 해석의 여지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과 언어의 한계, 그리고 기다림이라는 실존적 경험을 통해 관객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고도가 누구인지, 왜 기다려야 하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기다림 속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고도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다림 속에서, 비로소 인간다워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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