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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존슨 [라셀라스] : 작가 소개 및 줄거리, 서평

by vaminglibrary 2025.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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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존슨의 라셀라스
새뮤얼 존슨 [라셀라스] / 민음사

 

작가 소개 : 새뮤얼 존슨, 보수적 휴머니스트의 초상

18세기 영국 문단을 논할 때,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 1709~1784)을 빼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시인, 평론가, 사전 편찬자, 수필가로서 당대 문학의 방향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영국 국어사전의 효시인 『A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1755)를 단독으로 편찬한 업적은 그를 언어학의 역사 속에 길이 남게 하였고, 『람블러』나 『이들러』 등의 수필 연재는 그의 철학적 사유와 문학적 감각을 동시에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존슨은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하되, 인간의 나약함과 허영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을 지녔으며, 도덕적 엄정함과 동시에 인간적 연민을 함께 품은 작가였다. 이러한 성향은 그가 1759년에 단기간 동안 집필한 『라셀라스』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직후,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단 1주일 만에 썼다는 이 짧은 철학적 소설은 단순한 플롯 뒤에 놀라운 지적 깊이를 감추고 있다.

줄거리 :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라셀라스, 아비시니아 왕자(Rasselas, Prince of Abyssinia)』는 이상적인 계곡에서 살아가는 젊은 왕자 라셀라스가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탐구하기 위해 세계로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라셀라스는 외견상 모든 것을 가졌지만 내면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다. 이디아왕국의 '행복의 계곡'은 풍요롭고 안전하며 모든 욕망이 충족되는 장소로 묘사되지만, 라셀라스는 오히려 그 안에서 존재의 목적과 진정한 만족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라셀라스는 철학자이자 지적인 동반자인 이믈라크와 함께 계곡을 벗어나 카이로로 향하고, 거기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며 인간 삶의 여러 양태를 관찰한다. 은둔하는 수도자, 사치를 즐기는 귀족, 학문에 몰두한 학자, 정치에 몰입한 관리, 심지어는 철학자까지—각각의 삶은 겉보기에 충만해 보이지만, 결국 그 속에는 나름의 결핍과 불만족이 내재되어 있다. 이 여정의 끝에서 라셀라스는 어떤 삶도 완전한 행복을 담보하지 못함을 깨닫는다. 그가 발견한 것은 '행복이란 추구할 수는 있으나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그 자체로 아이러니한 진실이었다.

읽는 내내 마주한 거울 –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자주 멈춰 선 지점은 바로 존슨의 문장들이 내면의 거울처럼 작용할 때였다. 라셀라스가 계곡 안에서 '모든 것이 있음에도 불만족스러운 상태'를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는 자주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늘날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리지만, 마음 깊숙한 곳의 허무는 여전하다. 라셀라스의 질문은 곧 우리의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왜 만족하지 못하는가?" 존슨은 행복을 정태적인 상태가 아니라 역동적인 탐구의 과정으로 본다. 그는 라셀라스를 통해 인간이 끊임없이 갈망하고, 탐색하고, 실망하며, 다시 꿈꾸는 존재임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이러한 반복 속에서 우리는 성숙해지고, 삶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작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인물로 묘사되는 이믈라크조차도 완전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는 진리를 탐구하지만, 언제나 그 진리는 손 닿을 듯 멀리 있다. 이 점에서 『라셀라스』는 단순한 철학 소설을 넘어서,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겸허한 통찰을 보여준다.

'부정의 문학'으로서의 라셀라스

『라셀라스』를 두고 일부 평자들은 지나치게 비관적이라 평하기도 한다. 실제로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이상향을 추구하지만, 어느 누구도 명백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소설은 어떤 종결도 없이 열려 있는 결말로 끝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야말로 존슨의 위대함이라고 본다. 그는 인위적인 희망을 강요하지 않는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세계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 고통 속에서도 존엄을 지키려는 자세가 이 작품에 녹아 있다. 요즘 유행하는 자기계발서나 동기부여 서적이 외치는 긍정주의와는 정반대 지점에 있는 이 책은, 오히려 그로 인해 독자에게 더 큰 위안을 준다. “당신이 방황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의 문학'은 인간의 고통과 한계를 솔직하게 응시할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존슨은 거기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는 외면하지 않고, 고통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삶의 정답은 없지만, 질문은 필요하다

『라셀라스』는 정답을 제공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질문을 남긴 채 독자의 손에 조용히 닫히는 책이다. 그러나 그 질문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책장을 덮고 한참이 지나도, 라셀라스가 행복을 찾기 위해 나섰던 그 여정은 내 마음속에서도 계속되었다. 이 책은 단지 고전이라는 이유로 읽혀야 할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 끊임없이 '더 나은 삶'을 외치는 사회 속에서 잠시 멈추어 자문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믿는 행복은 과연 진짜인가?" 새뮤얼 존슨은 이 짧고도 묵직한 이야기로 우리에게 말한다. 삶에는 완벽한 해답이 없다고. 그러나 질문을 멈추지 않는 그 순간, 우리는 이미 인생의 의미에 가장 가까이 서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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