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정말 전혀 상관하지 않는 사내가 여기 있었다."
이 한 문장이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말이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흔히 ‘예술가의 삶’이라 불리는 단어가 실제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중산층의 평범한 증권 중개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자신의 가족과 안정된 생활을 모두 내던지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파리로 떠난다. 이 비상식적인 결정은 작중 화자뿐 아니라 독자인 우리에게도 당혹감을 준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결국 예술에 모든 것을 바친다. 그것은 미화된 희생도, 감동적인 노력도 아니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며, 잔인하리만치 냉정한 결정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미워할 수 없다. 오히려 스트릭랜드의 고독과 광기, 순수함에 가까운 집착을 보며,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일상을 버린 자, 그리고 잃은 자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가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규범과 도덕을 초월한 존재로 그린다. 스트릭랜드는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아무런 뉘우침도 없이 그림만을 좇는다. 주변 인물들의 눈에는 그가 단지 미친 사람처럼 보일 뿐이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기존의 틀을 깬 예술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결정은 단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그가 속했던 사회와 가치관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다. 가족은 파괴되고, 친구는 상처를 입으며, 자신은 가난과 고독 속에 몸을 맡긴다. 독자들은 그를 이해할 수 없어 괴롭지만, 그렇다고 그를 온전히 비난하기도 어렵다. 예술에 삶을 건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에겐 상처로, 누군가에겐 영감으로 남는다.
달을 좇는 자, 그리고 6펜스를 쥔 자
제목인 [달과 6펜스]는 이 작품의 모든 것을 함축하는 상징이다. ‘달’은 우리가 꿈꾸는 이상, 예술, 자유를 상징하고, ‘6펜스’는 눈앞의 현실, 돈, 안정된 삶을 의미한다. 스트릭랜드는 달을 선택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6펜스를 쥔 채 살아간다. 이 대비는 단순히 이상과 현실의 대립을 넘어서, 인간이 갖는 본질적인 욕망과 두려움을 드러낸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달’을 꿈꾸지만, 대부분은 6펜스에 안주하며 살아간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이상을 좇는 삶이 얼마나 위험하고 외로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준다.
예술은 누구의 소유인가
[달과 6펜스]는 단순한 예술가의 전기적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진정한 예술은 무엇이며, 그것을 좇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스트릭랜드의 삶은 누군가에겐 파괴적이고 잔혹했지만, 그가 남긴 그림은 결국 세상을 바꾼다. 예술은 누군가의 인정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며, 때로는 예술가 본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를 담아낸다. [달과 6펜스]는 그러한 예술의 무게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그것이 가져오는 파괴와 소외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읽는 이로 하여금 한참을 생각하게 만들며, 우리가 쥐고 있는 6펜스가 정말 가치 있는 것인지 되묻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