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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 [면도날] : 내면의 진리를 향한 여정

by vaminglibrary 2025. 4. 16.

서머싯 몸 면도날
서머싯 몸 [면도날]

 

 

『달과 6펜스』를 읽고 서머싯 몸에 매료되어 그의 인생 3부작이라고 하는 소설들을 읽고 싶었다. 특히,  『면도날』은 배우 문가영이 추천한 책으로도 교보문고 홈페이지에 추천서와 같이 뜬 적이 있어 눈길이 갔다. 이 작품은 전쟁 후 세상에 회의를 느낀 주인공 래리가,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래리는 1차 세계대전 참전 후,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거부하고 내면의 진리를 찾아 나선다. 누군가는 그를 이상주의자라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 말하지만, 그가 택한 길은 단순한 방황이 아닌 깊은 고민 끝의 선택이었다. 이 작품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경험 이후, 삶의 방향을 재정립하려는 한 개인의 여정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던졌을 법한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삶 vs 내가 원하는 삶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다른 삶의 방향을 갖고 있다. 이사벨은 안정된 삶과 부를 중요하게 여긴다. 친구 그레이는 사업적 성공을 목표로 한다. 반면, 래리는 돈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닌, 자신만의 내면적 평화를 원한다. 그는 유럽을 거쳐 인도까지 여행하며 책을 읽고 명상을 하며 스스로를 돌아본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좋은 직업, 안정된 생활, 가정’ 같은 조건들을 그는 일부러 외면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삶이었다. 이는 단순한 ‘자기만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도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찾으려는 진지한 시도였다.

이런 래리의 선택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종종 이상하고 낯설게 보인다. 심지어 독자인 우리조차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여정이 결국 우리 각자가 겪는 삶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중 화자로 등장하는 몸

 

이 소설에서 특별한 점은 서머싯 몸 자신이 화자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야기를 전지적 시점에서만 풀지 않고, 직접 등장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며 서술한다. 이 덕분에 이야기가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화자인 몸은 전지적 작가처럼 모든 것을 판단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독자가 스스로 인물들의 선택을 바라보게끔 돕는다. 그는 래리를 전적으로 옹호하지도 않고, 이사벨의 선택을 쉽게 비난하지도 않는다. 이 중립적인 시선은 소설의 깊이를 더하고, 각 인물의 삶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삶의 정답은 없다

 

『면도날』은 마지막까지도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누가 옳았는지, 어떤 삶이 더 나은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이사벨은 결국 부와 안정을 택했지만, 완전히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 그레이는 경제적으로 회복했지만, 마음의 허전함은 남아 있다. 반면, 래리는 평범한 기준에서는 실패한 인생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의 기준에서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이 작품은 말한다. 사람마다 삶의 목적은 다르고, 그 목적을 찾는 방법도 다르다고. 그리고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으며, 마치 면도날처럼 얇고 날카로워 언제든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그러나 그 어려운 길을 가는 사람만이, 진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조용하지만 강하게 전한다.

 

새겨진 문장

_p. 58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 시행착오 따위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막다른 골목에도 들어가 봐야 제 목표를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요?"

 

_p. 82

"죽은 사람은, 정말로 죽은 사람처럼 보여."

 

_p. 84

'이런 것 저런 것을 고민하는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내가 거만하고 몹쓸 인간이라서 그런 걸지도 몰라. 나도 남들 가는 길을 가면서, 그럭저럭 세상사에 순응하면서 사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 말이야. 하지만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쌩쌩하던 녀석이 죽은 모습으로 누워 있던 게 떠올라. 그러면 모든 게 얼마나 잔인하고, 얼마나 무의미한가, 아니면 삶이란 눈먼 운명의 신이 만들어 내는 비극적인 실구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