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의 인생 3부작의 대망의 마지막 작품. 이 작품은 작가 자서전적인 내용이 실려 있어 작가 자신도 더욱더 특별하게 애착을 갖는 작품이다. 『인간의 굴레』는 단순히 한 사람의 성장기를 담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살아간다는 것’ 자체에 대한 깊은 고찰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필립 캐리라는 한 인물이 세상과 부딪히고, 사랑에 다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다. 꽤 많은 분량이라 읽는 과정도 쉽지 않지만, 읽는 동안 몇 번이고 책장을 덮고 깊은숨을 쉬게 된다. 왜냐하면 필립의 고민과 상처가 남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굴레’를 지니고 살아가고, 그것을 끊어내지 못해 방황하거나, 그 무게에 눌려 주저앉기도 한다. 이 책은 바로 살아간다는 그 굴레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완전한 주인공,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필립은 태어날 때부터 한쪽 발에 장애를 안고 세상에 나온다. 그리고 아주 어릴 때 부모를 모두 잃고, 외롭고 차가운 환경 속에서 자란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연약하고, 어딘가 부족한 인물이다. 하지만 필립은 그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싸워나가고, 또 살아간다.
특히 그가 밀드레드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보여주는 감정은 너무도 현실적이고 아프다. 그녀는 필립을 사랑하지 않지만, 필립은 계속해서 그녀에게 매달리고, 이용당하고, 또다시 다친다. 읽는 내내 “왜 저 사람을 계속 좋아할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매달렸던 경험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때론 스스로를 망가뜨릴 만큼 강한지를 이 작품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알려주는 이야기
필립은 여러 가지 삶의 길을 시도한다.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떠났다가, 결국 실패하고 다시 의학을 공부한다. 돈이 없어서 고생도 하고, 남들이 말하는 ‘괜찮은 인생’을 살기 위해 애써 보지만, 정작 마음은 늘 공허하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며 그는 조금씩 깨달음을 얻는다. 아주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 그 속에서도 작고 조용한 행복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마다 인생의 답은 다르고, 중요한 건 그 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부딪히고 고민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작가는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이야기해준다.
읽고 나면 나도 나를 돌아보게 되는 책
『인간의 굴레』는 읽는 데 시간이 걸리는 책이다. 등장인물도 많고, 내용도 가볍지 않다. 하지만 결코 어렵거나 지루한 책은 아니다. 오히려 천천히 읽을수록, 필립이 겪는 방황과 고통이 더 진하게 다가온다. 책을 덮고 나면 나도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어떤 굴레를 지니고 있는지, 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간과하고 지나가는 감정들 외로움, 불안, 열등감, 그리고 조용한 희망을 정직하게 꺼내 보여준다. 단순히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나의 인생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 『인간의 굴레』는 그래서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책이다.
새겨진 문장
_p. 403
사람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다. 인생에는 아무런 뜻이 없었다. 사라므이 삶에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태어난다거나 태어나지 않는다거나, 산다거나 죽는다거나 하는 것은 조금도 중요한 일이 아니다. 삶도 무의미하고 죽음도 무의미하다. (중략) 자기 존재의 무의미함이 오히려 힘을 느끼게 해 주었다. (중략) 인생이 무의미하다면, 세상도 잔혹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_p. 550-551
모든 사람이 몸에든 마음에든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다. (중략) 우리에게 한 가지 분별 있는 태도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고 잘못은 참아 내는 일뿐이다. 그리스도가 죽어가면서 했던 말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_p. 556
자신의 이상? 그는 의미 없는 삶의 무수한 사실들로 복잡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짜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가장 단순한 무늬, 그러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죽음을 맞는 그 무늬가 동시에 가장 완전한 무늬임을 깨닫지 않았던가? 행복에 굴복하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그것은 수많은 승리보다 더 나은 패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