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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 작가 소개 및 줄거리, 서평

by vaminglibrary 2025.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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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 을유문화사

 

작가 소개 : 존재를 사유하고 살아낸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는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소설가, 그리고 페미니즘의 사상적 근간을 확립한 인물이다. 그녀는 사르트르와의 동반자 관계로도 잘 알려져 있으나, 그 이름 자체로 이미 독자적인 지성과 문학성을 가진 존재였다. 『제2의 성』을 통해 여성의 존재론을 심화시킨 그녀는 철학 이론을 일상적 문장 속에 녹여내는 드문 작가 중 하나다. 인간의 자유, 선택, 존재의 무게를 문학이라는 수단으로 탐구한 그녀는, 이 작품 『아주 편안한 죽음(La mort douce)』에서 존재의 마지막 경계선, 즉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줄거리 요약 : 어머니의 죽음, 그 잔잔한 파문

『아주 편안한 죽음』은 보부아르의 자전적 산문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중심에 둔 체험적 기록이다. 병원에서 난소암 판정을 받고 점차 쇠약해져 가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과정은, 단순히 가족의 죽음을 기록한 회고담이 아니다. 보부아르는 ‘죽어가는 자’의 입장과 ‘남겨진 자’의 심리를 동시에 서술하며, 죽음을 감각과 사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그러나 그 단순함 안에는 죽음을 둘러싼 수많은 복합 감정—죄책감, 무력감, 과거에 대한 반추, 그리고 차마 말하지 못한 애정—이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다. ‘죽음을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그녀에겐 존재를 해명하는 철학적 작업이자, 관계를 정리하는 감정적 의례인 셈이다.

죽음을 마주하는 방식, 고통을 담아내는 문장

책의 제목인 ‘아주 편안한 죽음’은 아이러니의 외피를 쓴 표현이다. 실제로 어머니의 죽음은 편안하기는커녕, 육체적 고통과 심리적 해체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과정이었다. 의학적 조치에 기대어 통증을 억제하고 ‘인간다운 죽음’을 지향하지만, 그 시도 자체가 불완전하고 불편하다. 특히 그녀가 어머니의 항암 치료와 진통 조절에 있어 의료진과 상의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인간 존엄과 죽음의 조건을 묻는 장이다. 독자로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강하게 느낀 점은, 죽음은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해체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죽음을 앞두고 갖게 되는 공포, 수치, 그리고 이상하게도 찾아드는 안정감이 병원 침상 위에서 응축된다. 보부아르는 이를 시종일관 냉정하면서도 예민한 문체로 포착한다. 그녀는 감정에 함몰되지 않되, 감정의 진폭을 결코 지우지 않는다.

사랑과 거리감 : 딸의 위치에서 바라본 존재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녀가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조정해 나가는 방식이다. 보부아르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서 느꼈던 억압, 종교적 강요, 여성다움의 틀을 떠올리며 불편함을 토로한다. 그러나 동시에 병상에 누운 어머니의 눈동자에서 읽힌 연민과 인간적 취약함 앞에서, 딸로서의 복잡한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내가 이토록 아프다니.’ 이 고백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의 밀도이다. 이는 단지 한 사람의 죽음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관계의 해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보부아르는 죽음을 통해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며, 어쩌면 처음으로 어머니와 연결되었다고 느끼는 듯하다. 그 연결은 혈연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존재의 근원과, 존재를 품었던 누군가를 인정하는 행위이며, 결국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 지점에서 『아주 편안한 죽음』은 개인적 체험기를 넘어, 보편적 성찰의 문학으로 확장된다.

삶과 죽음 사이, 언어로 남은 흔적

『아주 편안한 죽음』은 소리 없이 무너지는 한 존재를 기록한 일기이자, 사유의 흔적을 따라 걷는 철학적 여정이다. 죽음은 더 이상 관념이 아니라, 지극히 구체적인 감각이자 시간이며, 나 또한 그 문 앞에 서 있을 날을 떠올리게 한다. 책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편안한 죽음’이란 표현의 의미를 음미하게 된다. 그것은 고통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억지로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그 과정을 지켜본다는 것, 감정을 껴안되 흘러넘치지 않도록 붙잡는다는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 작품을 통해 ‘죽음’이라는 가장 불가해한 개념을, ‘살아 있는 자의 언어’로 번역해냈다. 그녀의 문장은 그저 누군가의 죽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을 곁에서 체험한 자만이 쓸 수 있는 밀도와 떨림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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