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소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소설가로, 실존주의와 부조리 철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의 문학은 인간 존재의 의미, 죽음, 고통, 자유, 도덕적 책임과 같은 근본적 질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방인], [시지프 신화] 등과 함께, [페스트]는 그의 철학을 문학적으로 구현한 대표작이다.
소설 속 전염병은 단지 병이 아니다
[페스트]는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페스트가 창궐하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치밀하게 묘사한다. 의사 리외를 중심으로, 전염병과 싸우는 다양한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을 그려낸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지만, 실상은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사유이자, 고립과 연대, 부조리와 저항의 문제를 다룬 철학적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소설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사건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죽음이 일상이 된 도시에서, 사람들은 공포와 무력감 속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반응한다. 누군가는 현실을 외면하고, 누군가는 신의 뜻이라며 체념하고, 또 누군가는 연대의식으로 맞선다. 특히 리외는 영웅도 아니고 특별한 이상주의자도 아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일을 하는 평범한 의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동한다. 아점이야말로 카뮈가 강조하고자 한 '부조리에 대한 윤리적 대응'이다. 그렇게 이 [페스트]의 전염병은 단순한 전염병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를 시험하는 하나의 비유적 장치이며, 카뮈는 이를 통해 인간의 도덕과 공동체, 그리고 삶의 의미를 묻는다.
코로나 팬데믹, [페스트]를 다시 꺼내 들다
2020년 이후, 우리는 전 세계적 감염병 사태인 코로나 팬데믹을 겪었다. 이 시기 [페스트]는 전 세계적으로 다시금 주목받았다. 그 이유는 단순히 소설이 전염병을 다루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이 놀라울 정도로 오늘날의 현실과 겹쳤기 때문이다. 팬데믹 초기에 사람들은 감염병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는 [페스트] 초반에 오랑 시민들이 보인 태도와 흡사하다. "설마 우리 도시에서 페스트라니?"라는 반응은, 우리가 "감기 같은 것 일뿐"이라며 바이러스를 외면했던 것과 유사하다.
이어지는 도시 봉쇄, 사회적 거리두기, 의료진의 헌신, 인간관계의 단절, 불안과 혐오의 확산, 그리고 그 속에서도 이어지는 일상의 감내는 소설 속 세계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특히 리외와 같은 의료진들의 모습은, 코로나 시대에 방호복을 입고 사투를 벌이던 전 세계 의료진의 헌신을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페스트]는 특정 시대의 고전이 아니라, 인간 사회가 반복해서 겪는 보편적 위기에 대한 이야기로 기능한다. 그리고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코로나라는 현실 속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리외의 선택 그리고 우리의 선택
카뮈는 리외를 통해 "희망을 갖는 것은 부조리에 맞서는 유일한 인간적 자세"라고 말하고 있다. 리외는 말한다.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실성이란 굉장한 영웅적 희생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 맡은 바를 묵묵히 해내는 것, 공동체를 향한 연대의 의지인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는 수많은 리외들을 만났다. 이웃을 위해 자발적으로 거리 두기를 지키고, 방역 지침을 따르며, 서로를 위로했던 모든 이들이 그들이다. 카뮈는 [페스트]를 통해 전염병이라는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인간은 서로를 구할 수 있으며, 고립된 존재가 아닌 연대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태도를 선택할 것인가?" 이 질문은 코로나 시대의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공포 앞에서 무기력할 것인가, 아니면 서로를 위한 연대를 택할 것인가. [페스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제시하지 않지만, 리외의 모습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답을 찾게 한다.
왜 다시 [페스트]를 읽는가
[페스트]는 단순히 전염병만을 다룬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는, 하나의 철학적 실천이자 윤리적 성찰의 기록인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사태 속에서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성과 사회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고전은 시대를 초월해 우리에게 말 건네는 책이다. [페스트]가 다시 읽히는 지금, 그 메시지는 더 이상 문학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다. 이제 우리 스스로가 그 메시지에 응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