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 중독과 뇌 과학의 최전선에서 기록한 의사, 애나 렘키
애나 렘키(Anna Lembke)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이자, 중독 의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다. 중독 클리닉을 집접 운영하며 수많은 환자를 진료한 임상 경험과, 뇌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중독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문명과 깊게 연동된 현상임을 장조해왔다. [도파민네이션]은 그녀가 진료실 안팎에서 목격한 중독의 실상과 이를 뒷받침하는 신경생리학적 통찰을 통합해 풀어낸 대표작이다.
우리는 지금 '쾌락 과잉 시대'를 살고 있다
[도파민네이션]의 출발점은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현대인은 이전 어느 시대보다 풍요롭고, 쉽게 만족할 수 있는 수단을 가까이에 두고 있다. 클릭 몇 번이면 음식을 집 앞으로 배달되고, 원하는 영상은 무한히 제공되면, SNS를 통해 끊임없이 타인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렘키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중독과 무기력, 감정기복이 이러한 과도한 쾌락 소비의 부작용임을 경고한다. 그녀는 '도파민'이라는 뇌의 보상물질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도파민은 원초적으로 생존에 유리한 자극-음식, 성, 사회적 인정-에 반응하며 우리에게 동기와 만족을 제공한다. 하지만 렘키는 이 쾌락의 회로가 과도하게 활성화될 경우, 우리 뇌는 쾌락에 무감각해지고, 오히려 고통과 허무를 더 자주 경험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때 우리는 다시 자극을 찾아 헤매게 되고, 결국 더 강력한 자극을 요구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지금 우리는 '쾌락 과잉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그녀가 말하는 '도파민네이션'의 본질이다. 현대인은 도파민의 노예가 되었으며, 이 문명의 시스템은 우리의 뇌를 중독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현대 중독의 민낯을 드러내다
렘키가 이 책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부분은 '중독'에 대한 정의의 확장이다. 과거 중독이라 하면 술, 마약, 도박과 같은 고전적 예만 떠올렸지만, 오늘날에는 스마트폰, 넷플릭스, SNS, 쇼핑, 일, 심지어 '자기개발'조차 중독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작가는 환자들의 실제 사례를 통해 중독이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고, 그들의 인간관계, 직업, 정체성에까지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겉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성공한 중산층 여성 환자가 밤마다 초콜릿과 유튜브에 몰입하며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이러한 예는 중독의 특정 계층이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빠질 수 있는 '문명의 함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작가는 중독을 도덕질 결함이 아닌, 뇌의 구조적 균형이 무너진 결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자제력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닌, 뇌의 도파민 시스템 자체를 재조정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우리에게 강조한다.
쾌락의 균형을 되찾는 구체적 방법들
[도파민네이션]의 감정은 이론적 통찰에만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치유의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렘키는 이를 '쾌락-고통의 균형 저울'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리의 뇌는 쾌락을 추구하면 할수록, 반작용으로 고통을 동반하게 되며, 이 균형이 무너질 때 중독은 심화된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저울을 다시 평형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녀는 '도파민 금식(dopamine fasting)'이라는 실천법을 소개한다. 일정 기간 동안 자극적인 활동을 의도적으로 줄이고, 불편함을 견디는 훈련을 함으로써 뇌가 다시 '쾌락'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는 스마트폰 사용 줄이기, 무자극 산책하기, 혼자 있는 시간 확보하기 등이 있다. 중요한 포인트는 자극을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거리 두고 관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또한 렘키는 '의미 있는 고통'을 삶에 의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찬물 샤워, 금식, 운동, 명상 등은 육체적 불편함을 감내함으로써 도파민 저울을 다시 균형 있게 만들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그녀는 이 불편함이 단지 외로움이 아닌, 쾌락 중독에서 멋어나기 위한 '치유의 도구'라고 주장한다.
무엇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가
[도파민네이션]은 단지 중독과 뇌에 관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문명 속에 살고 있으며,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철학적 선언이기도 하다. 작가는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원하는 것을 끝없이 추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그녀의 메시지는 근본적으로 자율성과 인간성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 존재이며, 고통을 마주할 수 있는 존재이며, 의미를 찾는 존재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자극을 탐닉하는 쾌락주의에서 벗어나, 절제와 균형, 불편함과 의미의 길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렘키는 이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 역시도 중독적 성향을 지닌 인간이며, 환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늘 반성하고 배워나간다. 이러한 진심이야말로 이 책을 믿고 따라가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도파민 시대에 인간다움을 지키는 법
[도파민네이션]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문명 전체에 던지는 일종의 경고장이며, 동시에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희망의 로드맵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뇌는 지금 누구에게 조종당하고 있는가?" 그 질문은 불편하지만,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더 많이, 더 쉽게, 더 자극적으로 소비하도록 설계된 세상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다. 멈추고, 돌아보고, 균형을 다시 찾는 일. [도파민네이션]은 그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강력한 동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