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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런던 [야성의 부름] : 야성은 파괴적이지 않다

by vaminglibrary 2025.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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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
잭 런던 [야성의 부름] / 민음사

 

 

작가 소개 : 모험과 존재의 경계를 넘나든 작가, 잭 런던

 

잭 런던(Jack London, 1876~1916)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 거친 자연과 인간 존재의 투쟁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캘리포니아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노동자, 사냥꾼, 금광탐사자, 선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삶의 밑바닥과 자연의 극한을 직접 체험했다. 이 같은 경험은 그의 작품에 사실성과 생생한 생명력을 부여하였으며, [야성의 부름]은 그 정점에 있는 소설이다. 단지 동물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기보다는 인간 본성, 문명과 본능, 자유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을 담은 작품이다.

 

한 마리 개의 이야기로 그려낸 문명과 본능의 이중주

[야성의 부름]은 얼핏 보면 개를 주인공으로 한 모험 소설이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작품은 동물의 서사라는 옷을 입은 인간 존재에 대한 우화이며, 문명이 만든 허위의식에 맞서는 생존 본능의 각성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벅'이라는 개이다. 원래는 캘리포니아의 대저택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던 애완견이었으나, 어느 날 갑작스레 납치되어 혹한의 클론다이크로 끌려가 썰매견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 극적인 전환은 단순한 환경 변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문명에서 야생으로,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존재에서 본래의 본능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상징한다. 벅은 북극의 가혹한 자연 속에서 점점 자기 안에 잠들어 있던 야성을 깨워간다. 그는 배고픔과 싸우고, 다른 개들과의 위계 다툼을 통해 생존의 기술을 익힌다. 점차 그의 눈빛은 강해지고, 육체는 단단해지며, 내면에서는 알 수 없는 부름이 들려온다. 그 부름은 바로 '자연', '원초성', '자유'의 목소리이며, 벅은 이 목소리에 이끌려 점점 인간의 시계로부터 멀어져 간다. 이 여정은 곧 인간 자신이 겪는 정신적 귀환의 은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구나 사회화된 자아의 이면에 본능적 자아를 지니고 있으며, 극한 상황이나 절박한 환경에 처할 때, 그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야성의 부름'에 응답하게 된다. 잭 런던은 벅이라는 개를 통해, 이 원초적 부름과 문명 사이의 갈등을 우리에게 시사화하고 있다.

 

생존을 넘어선 존재의 투쟁

[야성의 부름]이 단순히 모험의 흥미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벅의 생존 여정이 단순한 육체적 투쟁을 넘어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철학적 질문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벅은 극한의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단지 살아남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가, 어떤 존재로 태어났는가를 알아가며 점차 인간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로 나아간다. 잭 런던은 벅의 변화를 단지 환경에의 적응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진화'라는 과학적 개념과 '존재론'이라는 철학적 문제를 섬세하게 겹쳐놓는다. 벅은 점차 옛 기억, 즉 조상들의 기억에 눈뜬다. 꿈속에서 동굴 속 인간과 함께하는 늑대의 이미지를 본다. 이는 곧, 벅이 단지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진화의 시간 속에서 이어져 온 생명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존재라는 점을 암시한다. 그의 귀환은 회귀가 아니라, 본래 자리로의 '귀의'이다. 특히 잭 런던은 벅이 끝내 인간의 언어와 질서, 보호와 소유의 개념을 벗어나 자유롭고 고독한 존재로 전환되는 과정을 찬란하게 그려낸다. 그에게 자유는 문명의 경계를 벗어날 때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며, 그 자유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 저항하는 가장 강력한 힘으로 묘사된다.

 

문명과 야성, 그 사이에 선 인간

이 소설이 동물의 이야기이면서도 깊은 감동을 주는 까닭은, 벅이 결국 인간의 어떤 면모를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잭 런던은 동물을 통해 인간을 말하고, 동물의 눈을 통해 인간 문명의 허상을 비춘다. 인간은 문명을 통해 질서와 편의를 얻었지만, 동시에 본성에서 멀어지고, 삶의 본질적인 감각을 잃어버렸다. 벅이 느끼는 고독과 해방의 감정은, 바로 그 감각을 다시 찾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맞닿아 있다. 잭 런던이 이 작품을 발표한 1903년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전되던 시기였다. 인간은 점점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기계와 시스템에 종속되어 갔다.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런던은 벅의 목소리를 통해 인간성 회복의 가능성을 묻고자 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자연과 본능에서 완전히 분리된 존재가 아님을, 오히려 그 근원과 연결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존엄을 되찾을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야성은 파괴적이지 않다, 오히려 치유적이다

[야성의 부름]은 짧지만 매우 강렬하다. 그것은 한 마리 개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벅은 결국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선택하고, 그 선택은 문명이 제시하지 못하는 존재의 기쁨과 자유로 그를 이끈다. 잭 런던은 이 작품을 통해 야성을 부정적인 폭력이나 파괴가 아닌, 생명과 본질의 힘으로 복원해 낸다. 그는 말한다. 야성은 단지 동물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잊고 지낸 감각이며, 세계와 다시 연결되려는 충동이며, 존재의 가장 단단한 중심이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단지 개의 생존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독자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다. 지금 나의 삶은 진실한가, 나의 감각은 깨어 있는가. '벅'처럼 역시 마음속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부름'을 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부름은 때로 조용하고, 때로 거세지만, 언제나 우리를 더 본래적인 곳으로 이끈다. 우리는 그 소리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질문을 곰곰히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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