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 인간 내면의 어두움을 집요하게 탐색하는 소설가
정유정은 한국문학에서 가장 강렬한 색채를 지닌 작가 중 한 명으로, 인간 본성의 어두운 이면을 깊숙이 파고드는 서사를 통해 독자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겨왔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데뷔한 이후 [7년의 밤], [28], 그리고 [종의 기원]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꾸준히 '사람이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탐문해 왔다. 특히 [종의 기원]은 그 주제를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인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불쾌함과 동시에 압도적인 몰입감을 준다.
완벽한 얼굴의 괴물, 한이안
[종의 기원]의 중심에는 한이안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뛰어난 유전자를 물려받은 듯 완벽한 외모, 명석한 두뇌, 철저한 자기 관리로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청년이다. 그러나 정유정은 그 겉모습 아래에 숨겨진 차가운 결핍과 생물학적 이질감을 통해 독자에게 묻는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한이안은 사람을 죽인다. 그것도 망설임 없이, 죄책감 없이. 그는 자기 자신을 '진화한 존재'라 여긴다. 최책감, 감정, 연민 같은 감각이 결여된 그를 작가는 '심리적 기형아'로 설정한다. 이 설정이 가져오는 충격은 단순히 범죄에 대한 공포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독자는 어느 순간, 그가 자신과 너무도 닮이 있다는 사실에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감정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의 시선을 통해 인간 내면의 불완전함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정유정은 한이안의 내면을 일인칭 시점으로 집요하게 파고들며, 독자가 그와 같은 공간, 같은 시선 안에 갇히도록 유도한다. 이 구조적 장치는 도덕적 불편함과 스릴을 동시에 자극하며, 일종의 서사적 함정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이안을 혐오하면서도, 끝까지 그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유전자의 선택, 선악의 경계를 허무는 질문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종의 기원'은 찰스 다윈의 동명 저서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정유정이 탐구하는 종의 기원은 진화론의 그것과는 다소 결이 다른 작품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이라는 종의 기원, 특히 '도덕'과 '악'이라는 초상적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하는지를 질문한다. 한이안은 반복적으로 자신이 '유전적 기형'일뿐이며, 자신의 행동은 환경에 의한 반응이 아닌 '본능'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려 하지 않으며, 그 책임을 유전자에 돌린다. 이는 인간의 행위가 과연 자유이지의 산물인가, 아니면 생물학적 결정론의 결과물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정유정은 이러한 논점을 단순히 이론적인 수준에 머물게 하지 않고, 극단적 상황에 인물을 몰아넣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체험하게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선과 악이 기준이 뒤섞이며, 결국 독자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인간은 본래 완벽하지 않으며, 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닐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 말이다.
긴장감과 서사의 균형, 정유정 소설의 미덕
[종의 기원]은 단순한 범죄 소설도, 철학적 에세이도 아니다. 이 작품은 장르적 서사와 심리적 탐색, 철학적 질문이 절묘하게 결합된 복합적 소설이다. 정유정은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녀는 독자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서사적 긴장감을 만들어내면서도, 문장의 깊이와 주제의식에서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 서사 자체는 매우 빠르게 흘러간다. 장면 전환은 속도감 있게 이어지고, 인물 간의 갈등도 꽤 촘촘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질문과 사유가 숨겨져 있다. '이안 같은 존재는 소설 속에만 있는가?'라는 물음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현대 사회 속 수많은 범죄 사건들과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그들이 어디서 기원했는지 고민하게 된다. 정유정은 그 물음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 자체를 독자에게 넘김으로써, 책을 덮은 후에도 생각이 지속되게 만든다.
인간 본성의 심연을 들여다본다는 것
[종의 기원]은 분명히 불편한 책이다. 감정 없는 살인자의 내면을 따라가는 동안 독자는 끊임없이 괴로움과 혐오, 그리고 묘한 연민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함은 피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진지하게 이해하려 한다면,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악의 가능성을 직시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정유정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책임, 자유의지와 생물학적 결정 사이의 불가피한 긴장감을 보여준다. '괴물'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종의 일부이며, 그 가능성은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다. [종이 기원]은 그 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보기 드문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