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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 잔잔한 위로

by vaminglibrary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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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책을 읽다 보면 문장이 아니라, 문장이 건네는 ‘말’이 마음에 남는 책들이 있다. 정혜윤 작가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이 그랬다. 처음엔 제목이 참 묘하다고 느꼈다. ‘슬픈 세상’이라니, 그리고 그 안에서 ‘기쁜 말’이라니. 이 두 단어가 나란히 놓인 것이 무척 낯설었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이 낯섦은 차츰 따뜻한 공감으로 바뀌었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자주 지나치는 말들,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붙잡아주는 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오랜 시간 라디오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이 어떻게 말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연결되었는지를 깊이 있게 전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단순한 산문집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오랫동안 들어주고 곱씹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 한마디의 힘

읽는 내내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말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믿음이었다. 흔히 위로라고 하면 커다란 제스처나 감동적인 말만을 떠올리지만, 작가는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말이 진심으로 들렸던 순간, "나도 그런 적 있어"라고 말해준 사람이 고마웠던 기억들. 그 모든 작은 말들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책 속의 문장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작가는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그렇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말은 마음을 잇는 다리라고. 이 책을 읽고 나니, 나 또한 누군가에게 건넨 말들이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말이 누군가에겐 오래도록 아픈 기억이 되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작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을 덜 무겁게 해 주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심스러워졌다.

 

조용하지만 깊은 위로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은 요란한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용히, 꾸준히 독자의 마음에 말을 건넨다. 어쩌면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책 속 말들이 자꾸 생각났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작가가 슬픔을 숨기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슬픔을 어떻게 견디고 지나왔는지를 따뜻하게 들려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꼭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은데 마땅한 사람이 없을 때, 그냥 말 없이 곁에 있어주는 친구처럼 느껴졌달까. 그래서일까, 읽는 내내 마음이 조용해졌다. 다 읽고 나서도 곁에 두고 천천히 다시 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 어쩌면 이 책은 힘든 날보다 평범한 날에 더 읽히는 책인지도 모르겠다. 무심코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해 주니까.

 

우리 모두의 말을 위해

 

스트레스가 무척이나 많았던 시기에 이 책을 만났다. 이런저런 일들이 계속 겹치고, 무언가가 잘 풀리지 않고, 책도 집중하기 어려웠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이 책은 내게 커다란 위안이었고, 위로였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은 누구에게든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특별히 문학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말’로 상처받고, 또 ‘말’로 위로받은 기억이 있을 테니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해온 말들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읽기 쉬운 문장 속에 담긴 따뜻한 마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는다. 말은 단지 소리가 아니라 마음이고, 관계이며, 살아 있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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