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 디자이너를 넘어 기획자로
조수용은 디자이너이자 브랜드 기획자로, NHN과 다음 커뮤니케이션, JOH를 거쳐 카카오 공동대표로 활동한 인물이다. 국내 인터넷 산업과 디자인 철학 양쪽에서 깊은 족적을 남긴 그는 '카카오 프렌즈'와 '밀도 있는 공간 기획'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시각 디자인을 넘어 인간의 감각과 삶의 결을 건드리는 데 방점이 찍힌다. [일의 감각]은 이러한 그가 그동안 쌓아온 사유의 결정체이며, 기획과 창작의 영역에서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새로운 해답이다.
일은 기능이 아닌 태도이다
[일의 감각]의 중심에는 '일은 기능이 아니라 태도다'라는 명제가 자리 잡고 있다. 작가는 일하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나 능력 이전에 '일을 대하는 감각'이라 말한다. 이는 곧 감정과 사고, 주체적인 판단이 결합된 일종의 삶의 방식이자 태도로 확장된다. 그는 '일을 시키면 하되,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과 '스스로 일을 만들고, 확장하는 사람들'을 비교하며, 후자가 바로 감각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즉, 일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과제가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구조를 설계해 나가는 창의적 행위이다. 이러한 관점은 단순히 직장생활에 국한되지 않는다. 프리랜서든, 예술가든, 혹은 조직 내의 일원이든 모든 형태의 일은 결국 자신만의 감각과 태도로 수렴된다는 점에서다. 조수용은 이를 위해 일의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며, '어떻게'가 '무엇을'보다 앞선다고 강조한다. 이는 현대사회의 효율과 생산성 중심적인 일의 패러다임을 재고하게 만든다.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단련된다
많은 사람들이 '감각'을 타고나는 재능으로 착각하지만, 조수용은 이 책에서 감각이란 '훈련되고 길러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의 감각은 반복되는 관찰, 시행착오, 자기 피드백의 고정을 통해 비로소 자기 것으로 자리 잡는다. 예컨대 그는 브랜드를 기획할 때도 제품의 기능이나 마케팅보다 '사용자의 맥락'을 먼저 고려한다. 이는 단순히 시장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의 눈높이와 무의식 속에서 움직이는 감정을 감지하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감각이다. 감각은 논리가 닿지 않는 빈틈을 채워주며, 숫자와 데이터로 설명되지 않는 설득력을 제공한다. 그는 말한다. "무언가를 잘 느끼고 포착해 내는 사람은 그것을 반복해서 연습해 온 사람이다." 이 문장은 디자인이나 마케팅, 더 나아가 모든 일의 영역에서 통용된다. 조수용이 지향하는 일의 감각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의지'에서 출발한다.
일의 감각은 결국 존재의 감각이다
책을 읽으며 반복적으로 느끼는 점은, 그가 말하는 '일의 감각'이 단순한 업무 수행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이를 존재의 감각, 즉 '나는 누구이며,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사유로 이끈다. 그는 "일은 나를 정의하는 가장 확실한 언어"라고 말한다. 이는 곧 우리가 어떤 태도로 일에 접근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 전체의 질이 결정된다는 의미이다. 감각 있는 사람은 일 자체를 자기화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창출한다. 그 의미는 곧 자아의 일부로 남는다. 특히 그는 '브랜드는 결국 사람의 감정에 닿는 것'이라는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이는 자신이 일하는 방식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 책은 단순히 조언을 나열하는 자기 계발서가 아니라, 일과 존재 사이에 놓인 철학적 질문을 다루는 책이다. 때문에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일 잘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성찰하는 시간이다.
일상 속 감각의 회복을 위하여
[일의 감각]은 겉으로는 일에 대한 이야기지만, 내면에는 존재의 감각을 회복하려는 치열한 고민이 담겨 있다. 조수용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단호하며, 이 시대의 일하는 사람들에게 본질을 묻는다. 그는 기술보다 태도를, 결과보다 과정을, 논리보다 감각을 중시하라고 말한다. 이는 결국, 우리가 일상을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지금, '일에 치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에 감각을 더할 수 있다면 삶은 훨씬 더 깊고 밀도 있게 흐를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일의 감각을 회복한다는 것은 곧, 나다움을 회복하는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