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스틸 미]는 [미 비포 유] 3의 마지막 편이자, 루이자 클라크라는 인물의 자아 여정을 완성하는 이야기이다. 많은 경우 시리즈의 마지만 권은 마무리의 기능에 치중하기 마련이나, 조조 모예스는 '결말'보다 '지속'에 집중한다. [스틸 미]는 끝이 아니라 계속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며, 단지 사랑의 마무리가 아니라, 자아의 주체성을 되찾는 서사다. 이 소설의 무대는 뉴욕이다. 루이자는 윌 트레이너가 남긴 유산을 안고 런던을 떠나 낯선 대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녀의 임무는 간병인이 아닌 '동반자'로서, 부유한 가문의 아내를 보조하는 일이다. 그러나 역할의 이름은 달라져도, 루이자는 여전히 타인의 세계에 발을 디딘 이방인이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이 소설의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이 '이방성'이다. 조조 모예스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화려함과 복잡함을 배경 삼아, 루이자가 어떻게 자신을 잃지 않고, 혹은 새롭게 정의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스틸 미]는 단순한 로맨스도, 이민자의 성장 이야기도 아니다. 그것은 자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군가의 연인으로서가 아니라, '루이자 클라크'라는 한 개인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투쟁의 기록인 것이다.
이야기 속 이야기, 삶의 단면들
[스틸 미]에서 조조 모예스가 가장 탁월하게 해낸 것은 서사에 내포된 다양한 인간 군상을 생생하게 그려낸 점이다. 루이자가 돌보게 되는 '애그니스'는 젊고 아름다운 동유럽 출신의 여성으로, 나이 많은 억만장자 남성과 결혼한 인물이다. 사회적으로는 '금전적 결혼'이라 조롱받는 그녀는, 사실은 외로움과 타인에 대한 경계로 가득 찬 인물이다. 루이자와 애그니스의 관계는 처음에는 철저한 고용관계로 시작되지만, 점차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서로를 이해해 가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 관계는 조조 모예스가 이전에도 즐겨 사용한 서서의 구조인 세대나 계층, 출신의 차이를 극복하는 감정적 유대를 다시 한번 효과적으로 활용한 예이다. 또한, 루이자는 뉴욕의 작지만 소중한 공동체인 '네이선'과 도서관, 그리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노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삶의 또 다른 면들을 경험한다. 이는 루이자가 윌이나 샘 같은 강렬한 사랑의 감정이 아닌, 일상의 관계와 존재를 통해 자신을 단단하게 세워 나가는 과정이다.
사랑의 문제, 존재의 문제
샘과의 관계는 루이자의 내면 갈등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그녀의 새로운 삶을 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루이자는 그런 그에게 점점 소외감을 느낀다. 이 과정은 이전 두 작품과는 다르게 훨씬 현실적이고, 감정적으로 복잡하게 묘사된다. 사랑은 서로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기다리는 과정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루이자 자신도 그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어느 시점에서는 자신의 깜과 방향을 수정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이 갈등은 단지 연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우리는 관계 안에서 어디까지 '나'로 남을 수 있는가. 혹은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나'를 내어줄 수 있는가. 조조 모예스는 이 질문에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독자가 루이자의 경험을 따라가며, 각자의 삶에서 답을 찾기를 유도한다.
'나로 있는 것'의 존엄에 대하여
[스틸 미]라는 제목이 곧 이 소설의 정서적 핵심이기도 하다. "여전히 나는 나다." 사랑을 하고, 상실을 겪고, 새로운 곳에 가고,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고 해도, 루이자는 결국 '루이자 클라크'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지키고자 한다. 이것은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삶이 우리를 휘감고 흔드는 와중에도, 어떤 감정은 중심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존재의 존엄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조용히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정서는 루이자가 도서관 봉사를 하며 만난 노년층 인물들의 삶에도 잘 드러난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사회에서 점점 비가시화된다는 것은 어떤 감정일까. 루이자는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점점 더 '말할 줄 아는 사람',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 역할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성장했음을 확인한다.
삶은 계속되고, 나는 나로서 살아간다
[스틸 미]는 시리즈의 마지막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시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루이자가 마침내 자기 삶의 방향타를 자신의 손에 쥐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더 이상 누군가의 연인, 누군가의 간병인, 누군가의 딸이기만 하지 않다. 그녀는 그 모든 관계들 속에서 '나'라는 정체성을 지키며,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조조 모예스는 [미 비포 유]에서 독자에게 눈물과 사랑을 안겨주었고, [애프터 유]에서는 상실과 회복을 그려냈다. 그리고 이 [스틸 미]에서는 조용하지만 강하게 말한다. 우리는 누구의 인생 속 인물로만 존재할 수 없고, 결국 우리는 각자의 삶을 책임지고, 그 삶의 이름으로 걸어가야 한다고 말이다. 이 소설은 그렇게 '혼자가 아니면서도, 홀로 존재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틸 미]는 가장 개인적인 고백으로 시작해서 가장 보편적인 위로로 끝나는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