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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스 [부처스 크로싱] : 황량함 속에 마주한 삶의 진실

by vaminglibrary 2025.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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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스 부처스 크로싱
존 윌리엄스 [부처스 크로싱]

 

 

 

『스토너』를 통해 알게 된 존 윌리엄스의 작품이기도 하고, 이동진 평론가의 강력한 추천에 의해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을 선택해 읽었다

 

끝없는 황야, 메아리치는 공허함

『부처스 크로싱』 을 읽는 동안,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끊임없이 무언가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막연한 기대도, 뚜렷한 감동도 아니었다. 오히려 뼛속까지 스며드는 황량함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었다. 존 윌리엄스는 미국 서부의 풍경을 배경 삼아, 삶이란 본질적으로 얼마나 덧없고 무력한 지를 조용히, 그러나 냉정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윌 앤드루스는 도시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더 크고 진짜인 삶을 찾아 서부로 향한다. 그는 들소 사냥이라는 원초적 체험을 통해 인생의 어떤 본질을 발견하려 했다. 그러나 대자연은 인간의 의도나 이상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겨울이 찾아오고, 눈보라는 사냥대를 고립시킨다. 끝없는 침묵과 차가운 바람 속에서, 앤드루스와 동료들은 점차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잠식당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느껴진 것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하는 공포였다. 자연 앞에서의 무력함, 그리고 그 무력함을 자각한 후에도 삶은 묵묵히 계속된다는 사실은 어떤 영웅담보다도 깊은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듯 보이나

 

앤드루스는 사냥에 나설 때, 분명 어떤 답을 얻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무수한 들소를 죽였음에도 얻은 것은 없었다. 피비린내 나는 가죽 더미는 시장의 변화 앞에서 한낱 쓰레기 더미로 전락했고, 모든 수고는 헛된 것이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앤드루스가 이 실패를 통해 특별한 깨달음을 얻는 장면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어떤 교훈을 외치지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의 변화는 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서서히 스며들어, 그를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이 점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리는 종종 실패나 고통을 통해 '무언가를 배웠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앤드루스처럼 우리는 때로 이유 없는 실패를 경험하고, 허무와 상실감을 끌어안은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삶은 모르게 변해 있다. 비록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삶은 결국 계속된다

 

『부처스 크로싱』을 덮으며 가장 오래 남은 감정은, 어쩌면 체념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다. 열정이나 순수함도 때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삶은 그런 실패와 공허함 속에서도 계속된다. 앤드루스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부처스 크로싱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가 다시 동부로 돌아갈지, 또 다른 길을 선택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미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점이다.

황량한 겨울을 살아낸 앤드루스는 이제 세상이 가진 잔혹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알고 있다. 그의 변화는 외형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내면에는 확실히 새겨졌다. 나는 이 점에서 진짜 성장을 느꼈다.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견디는 법을 배움으로써 성장하는 것.

취미로 독서를 즐기는 나 역시, 이 소설을 통해 어떤 막연한 희망 대신, 삶의 무게를 조금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특별한 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그저 주어진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부처스 크로싱』이 전하고자 한 삶의 진실이 아닐까.

 

새겨진 문장 

 

_p. 61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데도 발밑에서 흐르고 합쳐지는 듯한 단조롭고 넓은 평원에서 강을 내다보며, 그는 밀러와 약속한 사냥은 그저 핑계이자 자신에게 꾸민 계략이며, 뿌리 깊게 박힌 관습과 일상에 대한 임시 처방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보는 곳, 가려는 곳은 사업과는 관계없었다. 그는 자유롭게 그리로 갈 것이다. 해 지는 곳까지 끝없이 펼쳐진 듯한 서쪽 지평선의 평원으로 자유롭게 갈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자신을 성가시게 할 마을과 도시들이 늘어서 있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이제 어디 살든, 그 후에 살든, 도시와는 점점 더 멀어져 자연으로 들어갈 거라 느꼈다. 이야말로 인생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느꼈다. 

 

_p. 188

잠들기 직전, 부처스 크로싱에서의 그날 밤 프랜신에게서 도망쳤던 일과, 아까 낮에 여기 콜로라도의 로키 산에서 내장을 제거한 들소에게서 도망쳤던 일 사이에 미미한 연관성을 생각해 냈다. 들소에게서 도망친 이유는 피와 악취, 흘러나오는 내장에 여자처럼 욕지기를 느껴서가 아니었다. 겨우 조금 전만 해도 당당하고 고귀하며 생명의 위엄으로 가득했던 존재가 이제 속절없이 가죽이 완전히 벗겨진 채 죽은 고깃덩이가 되어, 존재 자체 또는 그 존재에 대한 앤드루스의 개념을 완전히 빼앗긴 채 기괴하게 조롱하듯 눈앞에 걸렸기 때문에 구역질이 나서 도망쳤다. 그것은 들소 자신도, 앤드루스가 상상했던 들소도 아니었다. 그 들소는 살해당했다. 앤드루스는 그 살해를 통해 자기 안에 있던 무언가가 파괴되는 걸 느꼈다. 그걸 마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_p. 306

"지금은 알겠나?"

앤드루스는 불안하게 몸을 움직였다.

"젊은 사람들은," 맥도널드는 업신여기듯 말했다. "찾아낼 무언가가 있다고 늘 생각하지."

"네."

"글쎼, 그런 건 없어." 맥도널드가 말했다. "자네는 거짓 속에서 태어나고, 보살펴지고, 젖을 떼지. 학교에서는 더 멋진 거짓을 배우고. 인생 전부를 거짓 속에서 살다가 죽을 때쯤이면 깨닫지. 인생에는 자네 자신, 그리고 자네가 할 수 있었던 일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자네는 그 일을 하지 않았어. 거짓이 자네한테 뭔가 다른 게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지. 그제야 자네는 세상을 가질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되지. 그 비밀을 아는 건 자네뿐이니까.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어. 이미 너무 늙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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