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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 [불안의 기원] : 불안을 안고, 함께 사는 법을 묻다

by vaminglibrary 2025.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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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의 불안의 기원
지그문트 바우먼 [불안의 기원] / 다산초당

 

 

작가 소개 : 현대를 가장 불편하게 응시한 눈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2017)은 폴란드 사회학자이자 사상가로, '액체근대'라는 표현을 통해, 오늘날 사회가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며 동시에 얼마나 불안정해졌는지를 날카롭게 짚어낸 인물이다. [불안의 기원]은 그의 후기 저작 중 하나로, 단순히 심리적 감정을 넘어, 불안이 어떻게 현대사회의 구조 자체로부터 비롯되는지를 다룬다. 내가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기대한 것은, 불안이라는 감정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몇 가지 이론이나 개념들이었다. 그러나 책장을 덮었을 때 남은 건은 단순한 지식이 아닌, 내 삶 전체를 비추는 낯선 거울 하나였다.

 

내 이야기 같은 내용

책을 읽다 보면 자꾸만 멈추게 된다. 너무 단정하지도, 감정적으로 몰아붙이지도 않지만, 바우만의 문장은 날이 서 있다. 어느 한 문장에서 걸음을 멈춘 순간이 있었다. "현대인은 책임지지 못할 만큼의 자유를 떠안았고, 돌봐줄 아무도 없는 개인이 되었다." 단 한 줄인데, 책상 앞에 있는 내 모습이 투영되는 느낌이었다. 스스로를 자유로운 사람이라 여겨왔지만, 사실 나는 선택의 무게에 눌려 살아가고 있었다. 직장을 고르고, 인간관계를 맺고 끊고, 어디에 소속될 것인지 결정할 때마다, 그 결과는 모두 내 몫이었다. 실패해도, 고립되어도, 누군가 탓해줄 대상이 없다. 바우만은 그것이야말로 현대적 불안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사회는 구조적 불안을 철저히 개인의 내면으로 내리꽂고, 우리는 실패할 때마다 '내가 부족해서'라고만 생각하게 된다. 그 지점에서 나는 이 책이 나와 무관한 사회학 개념서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불안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불안을 너무 쉽게 개인의 상태로 치부해 버린다. 성격이 예민해서 그렇다거나, 삶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식이다. 하지만 바우만은 이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말한다.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 중 하나는, '불안은 시스템이 만든 그림자'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노동시장의 유동성, 사회관계의 일시성, 정치 담론의 도구화가 결국 개인을 파편화하고 고립시킨다고 말한다. 누구도 오래 머물지 않고, 누구도 타인의 삶에 깊이 책임지지 않는다. 관계는 가볍고, 커뮤니케이션은 즉흥적이다. 이 모든 것이 개인에게는 끊임없이 불확실성과 존재의 위협으로 작동한다. 특히 디지털 시대의 인간관계에 대한 그의 진단은 뼈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그들 중 누구와 진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는 자신 없다. 그는 "연결은 증가했지만, 결속은 사라졌다"라고 썼다. 그 문장을 읽고 한참 동안 아무 페이지도 넘기지 못했다.

 

가장 깊숙한 불안은 도덕적 혼란에서 온다

예상치 못했던 지점은 바우만이 도덕을 언급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불안의 뿌리를 심리나 사회 구조에만 두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은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흐려진 데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런데 그 선택이 윤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판단할 기준이 애매하다. 성공을 위해 타인을 밀어내는 것이 옳은가? 관계 속에서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 좋은가? 사회는 대답해주지 않는다. 각자 판단하라고 한다. 바우만은 이 개인화된 윤리가 오히려 사람들을 끊임없는 자기 의심 속으로 밀어 넣는다고 본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나는 지금까지 불안이라는 감정을 단지 심리의 문제로 여겨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불안의 기원]을 통해 그것이 얼마나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윤리적인 문제인지를 처음으로 체감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공동체를 잃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마지막 장에서는, 바우만이 '공동체'를 말한다. 그는 불안을 없애는 해법을 제시하진 않는다. 다만, 우리가 불안을 줄여가기 위해서는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말한다. "불안은 혼자의 감정이 아니라, 함께하지 못할 때의 감정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이 책이 단순히 경고의 메시지가 아니라, 어쩌면 하나의 초대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초대는 우리 모두가 다시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 실패를 덜 두려워하며, 누군가를 내 곁에 둘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는 요청일지도 모른다. 그것이야말로 바우만이 말하는 '연대의 윤리'이며, 불안에 맞서는 유일한 감정적 무기일 것이다.

 

불안을 안고, 함께 사는 법을 묻다

[불안의 기원]은 쉽지 않은 책이다. 문장은 어렵지 않지만, 생각은 무겁다. 그 무게는 읽는 이를 피곤하게도 만들지만, 동시에 불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불안이 나만의 약점이 아니며, 오히려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의 공통된 정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우만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지금 이 시대의 불안은 우리가 견뎌야 할 고통이 아니라, 직면하고 성찰해야 할 징후라고 말한다. 그 말에 나는 오래 머물러써다. 어쩌면 진짜 용기란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불안을 타인과 나눌 수 있을 만큼 인간답게 살아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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