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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 산문으로된 노래

by vaminglibrary 2025.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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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 1951~2022)은 프랑스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탐구해 온 작가이다. 그는 대중적인 인기보다 자기만의 고요한 언어를 견지하며, 삶의 미세한 떨림과 영혼의 울림을 담아내는 글쓰기를 추구하였다. 종교, 철학, 예술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지만, 그의 글에는 언제나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경외가 깃들어 있다. 간결한 그의 문장은 오랜 여운이 남고, 조용한 기도처럼 감동을 선사한다.

 

 

빛의 언어로 새긴 고요한 격정

[환희의 인간]은 문장 하나하나에 감정에 베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니, 감정이라기보다 생의 숨결, 삶의 떨림에 더 가까운 무언가였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노래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생의 조각들을 바라본다. 그가 고요 속에서 지켜본 인간의 환희는 대단한 사건이나 위대한 사상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삶 속에 숨어 있었다. 그는 대상이나 순간을 정면으로 말하기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여백과 침묵으로 그것을 드러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치 거울 속의 세계를 보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모든 문장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으며, 오히려 그 단순함 때문에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닿는다. 보뱅은 말의 가장자리를 따라, 침묵의 결을 어루만지며 존재의 진실을 건드린다. 이것이 보뱅의 매력이다.

 

 

사라진 것들에 대한 찬사

보뱅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노래하는 시인이다. [환희의 인간]에서도 그는 크고 분주한 것보다 작고 조용한 것에 더 깊은 관심을 보인다. 이름 없는 사람들, 사소한 물건, 지나가는 순간들. 그는 이들을 향해 경건하리만큼 조심스럽고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그에게 글쓰기는 기록이 아니라, 기억을 안아주는 행위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다. 하지만 그 간결함은 무심함이 아니라 치열한 응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치 하나의 문장을 쓰기 위해 수없이 많은 침묵을 견뎌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느끼고 이해하게 만드는 방식은 단순한 서술을 넘어선 체험에 가깝다. 그는 '전하려는 메시지'보다 '그저 존재하는 감각'을 중요하게 여긴다. 보뱅의 문장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깃들어 있다. 등장인물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존엄을 부여받으며, 그의 세계 안에서는 어떤 존재도 하찮게 다뤄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보뱅의 문장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며, 독자로 하여금 삶을 조금 더 부드럽고 정직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환희는 결코 시끄럽지 않다

보뱅이 말하는 '환희'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감정과는 사뭇 다르다. 그것은 요란하거나 격정적이니 않다. 오히려 조용하고, 미세하며, 금세 사라져 버리는 감정이다. [환희의 인간]은 그런 환희를 섬세하게 포착한 책이다. 그가 말하는 환희는 특정한 사건이나 목적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일상적인 순간들 속에서 갑작스럽게 피어나는 감정이다. 아침 햇살이 책상 위에 떨어지는 풍경, 고요한 밤에 들려오는 바람소리, 문득 생각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 이러한 정면들이 보뱅에게는 경이의 순간이며, 환희의 원천이다. 그는 삶을 서두루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을 천천히 바라보며, 그 안에서 의미를 길어 올린다. 이 점이야말로 그의 글이 이 시대에 더욱 절실히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효율성과 성취를 강조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보뱅은 '존재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그의 글을 읽고 나면 나도 무르게 삶의 속도를 늦추게 되고, 주변의 사소한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삶을 다시 살아내느 감각

[환희의 인간]은 그저 한 권의 책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감각이며, 태도이며,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크리스티앙 보뱅은 인간의 고통, 슬픔, 그리고 기쁨을 가장 고요한 언어로 기록한다. 그의 문장은 독자에게 무엇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가만히 머물고 바라보게 만든다. 그의 글은 책을 덮은 이후에 더욱더 진정한 울림을 남긴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말보다 침묵이, 설명보다 시선이, 화려함보다 단순함이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환희의 인간]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감각을 되살려주는 글이다. 그것은 우리가 다시 '사람'으로 존재하게 하는, 조용한 힘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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