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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허무와 고독 속에서 피어난 감정

by vaminglibrary 2025.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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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시대를 꿰뚫는 우아한 고독의 문장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1959년 출간 이후,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독자들의 마음을 붙잡는 고전이다. 단순한 삼각관계를 넘어, 인간 내면의 공허함과 감정의 윤리, 그리고 삶의 균열 속에 피어나는 연민과 애정의 가능성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사강 특유의 간결하고도 우아한 문체는 독자에게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조용한 설렘을 동시에 안긴다. 주인공 폴과 로제, 그리고 시몽이 얽히는 이 복잡 미묘한 관계는 단순한 연애담을 읽히지 않으며, 오히려 고독한 인간 존재가 타인과 맺는 방식에 대한 사유로 확장된다.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문장은,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취향의 질문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인물들 간의 정서적 거리와 감정의 미세한 흔들림을 드러내는 일종의 암호와 같다. 브람스의 음악처럼 이 작품도 격정보다는 절제된 감정 속에서 서서히 독자의 심연을 흔들어 놓는다.

 

감정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소설의 주요 화자인 폴은 마흔을 넘긴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긴 연인과 관계 속에서 어느덧 무뎌진 감정을 안고 살아간다. 그녀는 안정된 일상과 애정 없는 연애 사이에서 오랜 시간 살아왔고, 그런 그녀 앞에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청년 시몽이 등장한다. 시몽은 직설적이며 감정에 솔직하고, 무엇 보다도 시몽은 폴을 진심으로 대한다. 나이 차라는 현실적 장벽, 삶의 템포 차이, 감정의 지속 가능성등 다양한 요소가 두 사람의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지만, 시몽은 계속해서 묻는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 질문은 결국, "당신은 지금 이 감정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었는가"라는 더 깊은 의미로 읽힌다. 폴은 자신에게 다가온 이 예상치 못한 감정 앞에서 흔들린다. 이는 단순한 유혹이나 욕망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오랜 시간 억눌러온 감정의 필요, 존재의 외로움을 메우려는 시도, 그리고 한때 놓쳐버린 삶의 감각을 다시 붙잡으려는 본능적 움직임이다. 사강은이 복잡한 감정의 결을 매우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녀는 폴이 느끼는 내적 갈등, 혼란, 욕망, 죄책감, 그리고 결국 선택하게 되는 외로움까지도 그려낸다. 사랑은 언제나 옳은 선택이 아니며, 때로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포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소설은 조용히 우리에게 말해 준다.

 

허무와 고독 속에서 피어난 감정의 진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결코 낭만적인 연애소설로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얼마나 자주 외면당하며, 또 얼마나 자주 고독과 닮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폴과, 시몽, 로제의 관계는 선명한 해답을 주지 않으며, 독자는 그들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누구에게도 완전히 감정이입하지 못하는 묘한 긴장 속에 놓인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사강이 인물들을 단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제는 무심하고 이기적인 인물임에도 어디가 연민을 자아내고, 시몽의 열정은 종종 미숙함으로, 폴의 우유부단은 오히려 삶의 깊은 허무로 이해된다. 모든 인물이 고유의 고독과 상처를 안고 있으며, 사강은 그 고독을 아름다움의 결로 다듬는다. 결국 폴은 시몽을 떠나고, 다시 로제의 곁으로 돌아간다. 그 선택이 슬프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사랑의 부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화려한 결말이나 명확한 교훈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사강은 말한다. 우리는 모두 고독 속에서 누군가를 원하지만, 때로는 그 고독이 우리를 지탱해주기도 한다고.

 

삶을 다시 듣게 하는 질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독자에게도 던져진다. 그것은 단지 음악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감정에  정직한가, 삶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타인의 감정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가라는 깊은 물음이다. 사강은 감정의 찰나적 진실을 포착하는 데 탁월한 작가다. 이 작품 또한 그 증거이다.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연인의 묘사에 탁월하게 꼽는 작품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으뜸이 바로 이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강의 문장은 차분하고 절제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폭발할 듯한 감정의 파동이 숨어 있다. '감정의 윤리'라는, 간단하지 않은 주제를 사강은 특유의 우아함으로 풀어낸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단순히 사랑의 이야기로 읽히기보다는,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으로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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