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프랑수아즈 사강(Francoise Sagan)은 프랑스 문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작가다. 그녀는 단 18세의 나이에 발표한 첫 소설 [슬픔이여 안녕]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프랑스 문단에 '사강 신드롬'을 일으켰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주제, 즉 10대 소녀의 관능, 냉소, 그리고 슬픔을 독특한 감성으로 담아냈기에 그녀는 '문학계의 샤넬'이라 불리기도 했다. 젊은 나이의 여성 작가가 쓴 이 짧은 소설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매혹적이고, 불편하고, 또 이상하리만치 익숙하다.
태양빛처럼 가볍고, 그림자처럼 깊은 이야기
이 소설의 배경은 남프랑스의 여름 별장. 주인공 '세실'은 17살 소녈, 아버지 레몽과 함께 휴가를 보내고 있다. 레몽은 다정하지만 철없는 바람둥이로, 늘 젊은 여인들과 연애를 즐긴다. 이번 휴가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엘사라는 젊고 가벼운 연인을 동반했고, 세실은 이 관계를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곧 또 다른 여인, 아버지의 옛 친구 '안'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바뀐다. 안은 우아하고 지적인 여인으로, 세실의 세계를 단단히 흔들어 놓는다. 그녀는 엘사를 집 밖으로 몰아내고, 아버지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끌고 간다. 이에 세실은 불편함을 느끼고, 어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파고 속에서 본증적으로 균형을 깨트리려 한다. 결과는, 비극적이다. 소설의 길이도 짧다. 문장도 간결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복잡하고, 예민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처럼 점점 독자의 마음속에 퍼져간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모든 혼란을 10대 소녀의 목소리로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과 자유, 그리고 책임 사이
세실은 자유로운 소녀다. 동시에 무책임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녀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안정감보다는 느슨한 동료애를 느끼며 살아왔다. 세상은 가볍고, 사람들은 모두 잠깐 머물다 가는 존재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안은 그런 세실에게 낯선 가치, 예를 들어 '질서', '성숙', '책임'을 강요한다. 세실은 그 요구에 거부반응을 보인다. 혹은 이해하지 못한다. 안은 한없이 성숙한 인물이지만, 세실은 그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녀는 결정을 내린다. 한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계획을 꾸민다. 사랑과 질투, 자유와 억압, 어린 감성과 어른의 논리가 충돌하는 그 한가운데서, 세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선택을 하고 만다. 여기서 이 소설이 특별해진다. 사강은 세실을 영웅으로 만들지도, 악인으로 규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세실을 통해 인간의 모순적인 본성, 특히 '사랑을 원하면서도 그것이 주는 구속을 두려워하는 심리'를 아주 정교하게 그려낸다.
아름답지만 차가운 슬픔
이 소설에서 '슬픔'은 감정의 정점이라기보다, 모든 사건이 지나간 후에 찾아오는 정적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 [슬픔이여 안녕]은 역설적이다. 마치 "슬픔, 너와는 작별이야"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제 너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세실은 슬픔의 의미를 안다. 아니, 느낀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정당화하려 애쓴다. 그 불완전한 반성은 그래서 더 진짜 같다. 그것이 인간이고, 그것이 청춘이며, 그것이 슬픔이기 때문이다. 사강은 이 모든 감정을 문장 하나로 표현해 낸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들.
"우리는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 어른들의 삶을 훔쳐 입은 아이들이었다."
"사랑은 나에게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깨뜨릴 수밖에 없었다."
읽는 내내, 내가 겪었던 여름의 어느 감정, 말없이 누군가를 질투하던 순간,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났던 밤들이 떠올랐다. 이 소설은 그런 기억들들을 불쑥 불러낸다. 그래서 짧지만 잊히지 않는다.
십 대 소녀가 아니라 인간으로 읽어야 할 소설
[슬픔이여 안녕]은 종종 '프랑스의 사춘기 소녀가 쓴 충격적 데뷔작'으로 소비된다. 물론 그 수식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 '성숙하지 못한 아이의 일탈기'로만 읽기엔 너무나 정교하고, 깊고, 무척이나 아름답다. 이 소설은 청춘의 이야기이자, 인간의 이야기다. 무책임과 책임 사이, 자유와 구속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나이와 상관없이 그 흔들림의 중심에 서본 적이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데뷔작으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평생 사랑과 고독, 쾌락과 허무를 오가는 글을 썼다. 그녀의 시작은 이미 완성형이었고, [슬픔이여 안녕]이 그 증거다.
책정을 덮고, 조용히 인사한다 - 슬픔이여, 안녕
책장을 덮고 나면 마음이 조용해진다. 한 줄의 결말도 화려하지 않고, 드라마틱하지 않다. 그러나 그 여운은 강렬하다. 마치 오래된 여름 사진을 꺼내 본 듯, 그 안의 햇살과 그늘이 함께 떠오른다. [슬픔이여 안녕]은 나를 '세실'의 자리에 세워 놓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를 묻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 대답을 기다린다. 결국 이 책은, 누구나 한 번쯤 맞이할 인생의 이별식을 열일곱 살 소녀의 목소리로 대신 말해주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조용히 따라 말하게 된다. "슬픔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