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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야나기하라 [리틀 라이프] : 작가 소개 및 줄거리, 서평

by vaminglibrary 2025.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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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야나기하라의 리틀 라이프1,2
한나 야나기하라 [리틀 라이프] / 시공사

 

 

작가 소개 : 인간의 한계를 묻는 작가

하와이 출신의 미국 작가 한나 야나기하라(Hanya Yanagihara, 1974~ )는 『리틀 라이프(A Little Life, 2015)』를 통해 전 세계 문학 독자들에게 잊지 못할 충격을 안긴 인물이다. 그녀는 생물학자였던 아버지와의 어린 시절 경험, 아시아계 이민자의 정체성, 미국 동부의 문예적 감수성까지 복합적으로 아우르며 문학적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첫 소설 『숲 속의 사람들 (The People in the Trees)』(2013)에서부터 식민주의와 과학 윤리를 탐색하던 그녀는, 두 번째 작품 『리틀 라이프』에 이르러 인간 존재의 감정적 지형도를 거의 해부학적으로 펼쳐 보이며, 심리와 언어의 한계마저 시험하는 서사를 구성해 냈다. 이 작품은 2015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았고, 이후 수많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그 찬반은 결국 한 가지 질문에 귀결된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줄거리 : 뉴욕의 네 남자, 그리고 한 사람의 지옥

『리틀 라이프』는 뉴욕을 배경으로, 네 명의 친구 — 주드, 윌럼, 맬컴, 제이비 — 가 대학 시절부터 시작된 우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장편 서사다. 초반은 이들 각자의 삶, 예술과 직업, 사랑과 성장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중심은 점점 주드로 기울게 된다. 주드는 수학과 법학에 모두 능통한 인물이지만, 그는 심각한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과거를 쉽게 말하지 않는다. 그의 몸은 수많은 흉터로 덮여 있고, 그 마음에는 더 말할 수 없는 상처들이 깊게 각인되어 있다. 우리는 점차 그가 겪어온 학대와 트라우마의 기록들을 목도하게 되고, 그 안에서 한 사람의 존재가 어떻게 파괴되고 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아내는지를 함께 체험하게 된다. 윌럼, 맬컴, 제이비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주드와 관계를 맺고, 특히 윌럼은 거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주드 곁을 지키지만, 끝내 주드가 지닌 ‘자기 혐오’와 ‘불신의 기원’까지는 닿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의 비극이자, 슬픈 진실이다. 어떤 상처는 아무리 사랑을 쏟아도, 완전히 치유되지 않는다는 사실.

읽는 고통, 그러나 멈출 수 없는 이야기

『리틀 라이프』를 읽는 내내, 나는 자주 책을 덮었다. 감정의 과잉 때문이 아니라, 진짜 고통이 너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더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고아원이 아닌 수도원에서 자란 주드가 겪은 폭력, 그를 구제한다고 나타난 어른들의 이중적인 얼굴, 그 모든 것이 단지 설정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작가가 고통의 디테일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묘사하기 때문이다. 한나 야나기하라는 이 소설을 통해 ‘문학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밀도’를 시험한 것이 아닐까. 고통이란 단순히 아프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가 말라붙고, 타인이 그것을 이해하려 하면 도리어 왜곡되며, 사랑이란 이름으로조차 구해지지 않는 깊은 구덩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조용히, 그러나 무참하게 증명해 낸다. 책장을 넘기며 느낀 것은, 이것이 단순히 주드 한 사람의 이야기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작은 삶(a little life)’을 살고 있다. 겉으로는 정돈된 일상을 유지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말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꿈틀거리고 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지점을, 우리가 숨기고 잊은 고통의 잔해를 문학이라는 손전등으로 비춘다.

가장 무거운 사랑, 가장 깊은 연대

주드의 삶은 단절과 고립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리틀 라이프』는 사랑과 우정이라는 단어를 그 어느 작품보다 진지하게 되새기게 만든다. 윌럼과 주드의 관계는 단순한 동성 간의 애정이나 동정심을 넘어서,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어떻게 끝까지 이해하려 애쓰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소설은 '사랑이 모든 것을 치유한다'는 낡은 구호에 기대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이 닿지 못하는 곳이 있음을, 사랑조차도 때때로 무력할 수 있음을, 그 무력함 속에서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 될 수 있음을 차분히 말한다. 한나 야나기하라는 그렇게 말한다. “사랑은 약속이 아니다. 사랑은 기억이고, 인내이고, 끝내 상처 입기를 감수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고통은 당신의 것이기도 하다

『리틀 라이프』는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심장은 무거워지고, 문장은 정적 속에서 뼈를 때린다. 그러나 이 고통스러운 독서는 분명 가치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감내하는 고통의 진실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 야나기하라는 감정의 극단을 실험하거나 독자의 눈물을 자극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가장 연약하고도 단단한 부분을, 모든 아름다움과 추함을 끌어안은 채 기록하려 했을 뿐이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주드의 얼굴이, 그의 팔의 상처가, 윌럼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문득 깨닫는다. 『리틀 라이프』는 단지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온 누군가의 삶, 혹은 바로 나 자신의 ‘작은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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