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씨가 한 인터뷰에서 이 책을 너무 감명 깊게 읽어, 여러 번 읽었으며, 이러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연주를 좋아하던 터라 그에게 영향을 준 이 책 또한 선뜻 읽게 되었다.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인간 존재의 이중성, 즉 이성과 감성, 정신과 육체, 규범과 자유라는 두 갈래 길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인물의 대비는 단순한 대조를 넘어서, 인간 내면의 깊은 분열과 화해를 모색하는 여정으로 나아간다. 이 서평에서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두 인물의 삶을 통해, 헤세가 던지는 질문에 귀 기울이고자 한다.
정신의 길을 걷는 자, 나르치스
작품의 초반부에서 독자는 지적이고 금욕적인 청년, 나르치스를 만나게 된다. 그는 수도원에서의 생활에 충실하며, 학문과 규율 속에서 인간의 영혼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상적 존재로 묘사된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를 향해 "너는 아직 너 자신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짧은 문장은 이후 펼쳐질 골드문트의 방랑 여정을 암시하며, 동시에 나르치스 자신이 추구하는 '정신의 질서'를 드러낸다. 그러나 나르치스는 단지 금욕주의자의 대변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골드문트가 감성적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밀어내면서도, 끝끝내 그를 기억하고 기다리는 이중적 태도를 지닌다. 이러한 복합성은 나르치스를 단순한 대척점이 아니라, 골드문트의 또 다른 자아로 느껴지게 만든다. 그리하여 독자는 그를 이상주의자로만 받아들이기보다는, 자기완성의 길을 선택한 또 하나의 인간으로 이해하게 된다.
감성의 방랑자, 골드문트
골드문트는 수도원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세속의 삶으로 나아간다. 그가 마주치는 것은 육체적 쾌락, 예술의 감동, 사랑과 상실, 그리고 죽음이다. 그는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떠나며, 그 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형성해 간다. 골드문트는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사랑이 어떻게 인간을 변화시키는지, 삶과 죽음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몸으로 겪는다. 그가 조각가로서 표현하는 예술은 단순한 미적 추구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어머니'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힘에 대한 경외로 이어진다. 그의 예술은 말하자면, 삶 자체에 대한 응답이다. 그리고 그는 이 예술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간다 이는 나르치스가 추구한 방식과는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같은 질문, 즉 '나는 누구인 게'에 도달하기 위한 방식이다.
두 갈래 길의 교차점에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단지 서로 다른 삶을 산 두 인물의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작품은 인간이 내면에거 겪는 근원적 분열-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성, 규율과 자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화해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여정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단지 대비되는 인물이 아니라, 한 인간 안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결국, 두 사람은 세월이 많이 지나 다시 만난다. 골드문트는 지쳐 있고, 상처 입었으며,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르치스는 그를 받아들인다. 이 장면은 단지 인간적 연민을 넘어서, 삶의 상반된 방식이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음을 상징한다. 그들은 서로의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의 길을 존중하며,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의 삶을 통해 자신 안의 어떤 결핍을 느낀다. 헤세는 이를 통해 단일한 삶의 이상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복합성을 인정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는 모두 어느 한쪽만으로는 완전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이 소설은 조용히 속삭인다.
인간 존재의 두 얼굴을 마주하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선택에 관한 소설이 아닌것이다. 이는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두 힘-정신과 감성, 질서와 자유-사이의 긴장과 그 조화를 향한 갈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결국 서로를 통해 자신을 완성한다. 독자 또한 이들의 여정을 따라 가며 자기 내면의 어떤 분열을 직면하게 된다. 헤르만 헤세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은 단 하나의 방식으로 존재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르치스의 사색 속에서도, 골드문트의 방랑 속에서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둘 모두가 결국 하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한 진실을 간결하면서도 시적인 언어로 담아내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