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98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 산문으로된 노래 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 1951~2022)은 프랑스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탐구해 온 작가이다. 그는 대중적인 인기보다 자기만의 고요한 언어를 견지하며, 삶의 미세한 떨림과 영혼의 울림을 담아내는 글쓰기를 추구하였다. 종교, 철학, 예술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지만, 그의 글에는 언제나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경외가 깃들어 있다. 간결한 그의 문장은 오랜 여운이 남고, 조용한 기도처럼 감동을 선사한다. 빛의 언어로 새긴 고요한 격정[환희의 인간]은 문장 하나하나에 감정에 베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니, 감정이라기보다 생의 숨결, 삶의 떨림에 더 가까운 무언가였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노래하거나 설명하지 않.. 2025. 4. 30. 존 윌리엄스 [스토너] : 묵묵히 살아낸 삶의 존엄성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는 대단히 조용한 작품이다. 화려한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없는 이 책은, 오히려 그래서 더욱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실패'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는 인생을 꿋꿋이 살아낸 한 인간의 초상을 응시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하찮게 보일 그 인생이, 나에게는 그 어떤 성공보다도 위대하게 다가왔다. 이 책은 내게 인생책이 되었다. 고요한 시작,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농장을 물려받을 생각으로 농대에 입학했으나, 교약수업에서 문학을 접하며 그의 삶은 조용히 방향을 튼다. 그러나 이 선택이 그의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는 평생 대학에 남아 조교수로 일하며, 크고 작은 좌절을 겪는.. 2025. 4. 29. 존 윌리엄스 [부처스 크로싱] : 황량함 속에 마주한 삶의 진실 『스토너』를 통해 알게 된 존 윌리엄스의 작품이기도 하고, 이동진 평론가의 강력한 추천에 의해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을 선택해 읽었다 끝없는 황야, 메아리치는 공허함『부처스 크로싱』 을 읽는 동안,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끊임없이 무언가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막연한 기대도, 뚜렷한 감동도 아니었다. 오히려 뼛속까지 스며드는 황량함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었다. 존 윌리엄스는 미국 서부의 풍경을 배경 삼아, 삶이란 본질적으로 얼마나 덧없고 무력한 지를 조용히, 그러나 냉정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윌 앤드루스는 도시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더 크고 진짜인 삶을 찾아 서부로 향한다. 그는 들소 사냥이라는 원초적 체험을 통해 인생의 어떤 본질을 발견하려 했다. 그러나 대자연은 인간의 의도나 이상을 전혀 .. 2025. 4. 28. 조승리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 비극을 '축제'로 필력이 좋은 작가를 오랜만에 만났다많은 에세이를 읽었지만 가슴 깊게 와닿는 작가는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거칠고, 당혹스럽고, 심지어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첫 페이지를 펼친 순간, 독자는 곧 알게 된다. 이 작가의 문장은 단순히 거칠기만 한 것이 아니다. 유머와 슬픔, 고통과 희망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살아 있는 문장’이다. 조승리는 말장난이나 감정 소비에 그치는 많은 에세이 작가들과 달리, 자기 고통을 문학적으로 다루는 데에 탁월한 감각을 지닌 인물이다. 그의 문장은 신랄하지만 깊고, 분노하지만 품위 있으며, 무엇보다 철저히 ‘자기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단 한 문장도 허투루 쓰지 않은 정성과 감정의 농도가.. 2025. 4. 25. 한강 [희랍어 시간] : 가장 아름다운 언어 한강의 작품 세계를 오래도록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그녀가 침묵과 고요 속에 숨겨진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처럼, 고통과 상처를 생생하면서도 절제된 언어로 그려내는 데 탁월한 그녀는 이번 『희랍어 시간』에서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바로 언어 자체가 존재를 매개하는 방식, 혹은 언어 이전의 감각을 감히 문장으로 번역해 내는 시도이다.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언어와 상실, 그리고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인물들은 파편화된 삶 속에서 각자의 고요한 세계를 구축하고, 독자는 그들의 ‘희랍어’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어간다. 작중 화자인 여성은 삶의 균열과 상실을 희랍어 수업이라는 틀 안에서 조심스레 다독인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언어 학습이 아.. 2025. 4. 24. 크리스티앙 보뱅 [지극히 낮으신] : 가난과 겸손 크리스티앙 보뱅은 말이 아닌 침묵으로, 사상보다는 시선으로 존재를 바라보는 작가였다. 그의 대표작 『지극히 낮으신』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비추는 작은 거울과도 같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영혼의 울림을 좇으며, 독자로 하여금 ‘가난’과 ‘겸손’이라는 말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얼마 전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 또한 이 성인의 그림자 아래 있었기에, 이 책을 떠올리며 두 사람의 생애를 오롯이 가슴에 담아 보았다. ‘지극히 낮은’ 존재의 고결함『지극히 낮으신』이라는 제목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자처했던 ‘작은 형제’, 즉 피조물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자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보뱅은 프란치스코를 신화 속 영웅이나 고고한 성인의 틀에 가두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프란치스코가 땅의 냄새를 품.. 2025. 4. 23.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17 다음